[NGO칼럼]오늘의 한국사회가 최대 자살사이트

  • 입력 2001년 2월 16일 13시 23분


작년에 인터넷 등급제를 실시하려다 실패한 정보통신부와 치안관계자들의 복수혈전이 뜨겁다. 반사회적 사이트니 어쩌니 하면서 자살사이트와 폭탄제조 사이트를 연일 맹폭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여기에 민간단체들이 대책모임을 준비한다고 하자 정통부가 재정적 지원까지 고려하는 것을 보면 최근 일련의 사태들은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의 장난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마지막 종착점은 정통부와 국정원을 중심으로한 인터넷 등급제의 재도입일 것이다. 특히 하는 일이 모호해 몇 년전 존폐위기까지 몰리고 현재까지 좌충우돌하는 정통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게임일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런 반사회적 사이트(?)가 사회문제의 원흉이고 그것들이 없어지면 우리사회는 정말 아름답고 건전한 사회가 될 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폭력과 섹스로 대변되는 사회악은 인류역사 그 자체이고 민주사회는 물론이고 독재와 전체주의조차 그것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다.

일련의 문제들을 환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반사회적 사이트들은 원인도 결과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며 도구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용도폐기하고 상처를 주며 자살로 몰고가는 우리사회가 최대의 자살사이트가 아닌가?

최근 늘어나는 청소년들의 자살은 자살사이트 때문이 아니라 성적 부진, 입시 중압감, 진로문제, 교우관계, 학교 폭력 및 왕따로 인한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 청소년들은 소위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초중고 12년을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면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우환은 성적이다. 이어 이어지는 입시와 취업 실패는 곧바로 인생 실패로 간주되는 사회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은 벼랑 끝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가정과 사회속에서 가능한 모든 고민을 찾아보려 하지만 그 몫은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만다.

또 199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10만명 중 16.1명이 자살했다. IMF 경제위기가 휘몰아친 97년에 이은 98년에는 10만명당 무려 19.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높은 비율이다. 경찰청이 1998년에 발표한 통계는 이보다 더하다. 10만명당 26.6명으로 헝가리, 핀란드 등에 이어 세계 2∼3위에 달하는 비율이다.

IMF이후 자살이 느는 것은 구조조정으로 실직상태에 이르면서 심리적 절박감이 원인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패배주의와 열등주의에 사로 잡혀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자살하는 것이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 10명 중 8명꼴로 우리나라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20대 젊은이 62%가 이민가고 싶다'고 했다는 국민체감지수 조사결과가 보도된 일도 있다. 대학생을 상대로 벌인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67%의 학생이 이민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민 간 사람들의 경우에는 주로 30대~40대 초반의 직장인이 대부분인데 직장에 대한 불안과 실직, 그리고 자녀교육문제 때문에 떠난다는 이유를 밝혔다. 아무리 봐도 답답한 현실이 탈출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은 누가 만들었는가? 거짓과 무능으로 일관하는 정권과 부패에 찌든 정치인들, 파렴치한 재벌들이 아닌가? 먼저 이들이 만든 부정부패로 가득찬 현실공간의 사이트들을 폐쇄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과 검찰은 법과 원칙에 입각해 자칭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비리를 뿌리뽑기보다 무능한 정권과 손잡고 지금 느끼는 국민들의 좌절과 절망의 모든 원인이 반사회적 사이트에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관계자들이 자살사이트나 폭탄사이트가 국가안위를 위해 그 어떤 문제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만 중요할 뿐이다.

이번 사태를 활용해 국민을 통제와 감시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면 그것은 정말 유치한 짓이다. 다시한번 정통부와 치안담당자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백찬홍/시민운동정보센터 사무국장 magicpuff@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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