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 입력 2001년 2월 9일 16시 20분


" 나타샤가 온통

마음을 쏟아버린 것은 가족이었다. 즉, 자신과 집에다 단단히 묶어 놓아야할 남편과 배고 낳고 기르고, 그리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될 아이들이었다.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

이견이 필요없는 러시아의 대문호.

살아생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지만 죽을 때까지 겸손하게 삶의 진실을 추구했다.

◇백작가문의 아들로 방탕한 생활

레프 톨스토이는 1828년 8월 28일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툴라시 근처에 있는 영지 야스나야 폴야나('숲 속의 밝은 초원'이라는 뜻)에서 백작 가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들의 손에 의해 양육됐으며, 가정교사들(독일인과 프랑스인)이 그의 교육을 담당했다. 1841년에 카잔 대학의 동양어문학부에 입학했다가 법학부로 옮겼으나, 형식적인 수업에 환멸을 느껴 중도에 공부 자체를 포기하고 재산 분할 이후 자기 소유지가 된 야스나야 폴야나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공허하고 답답한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후 시골 생활을 등지고 카프카스로 떠나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포병부대에 장교로 입대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쓰기 시작한 《유년시대 Detstvo》가 1852년 《현대인 Sovremennik》지에 게재돼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중편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어린 아이의 순수한 솔직성과 분석적 시각으로 인간들의 심리와 의사소통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의 슬픔과 기쁨, 꿈과 동경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회고록으로 독자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년시대》를 포함한 초기의 삼부작 《소년시대Otrochestvo》, 《청년시대 Yunost'》는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간주된다. 그후 군에 입대한 톨스토이는 1854년에는 다뉴브강 전선으로 배속됐다. 러시아가 투르크 제국 안에 있는 정교회 신자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 요인이 돼 일어난 크림전쟁은 흑해의 북쪽 해안에 있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영국·프랑스·오스만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러시아가 연합군에 대항해 1년 동안 싸운 세바스토폴 전투는 아주 치열했던 격전으로 유명하다.

◇전쟁을 다룰 때는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

톨스토이는 바로 이 세바스토폴 방어전에 참가했고,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세바스토폴 이야기들 Sevastopolskiye rasskazy》(1855-56)을 발표했다. 소설과 르포 형식을 결합시킨 이 작품은 전쟁을 주제로 다뤘다. 작가의 눈에 비친 전쟁은 진실과 허위가 가장 잘 나타나는 상황이며,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장교들의 이기심과 허위에 찬 영웅심이 사병들의 진실한 영웅적 행위와 대비돼 나타났다. 이같이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전쟁을 소재로 다룬 것들이 많은데, 여기서 나타나는 작가의 태도는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의 태도에 가깝다.

제대한 후 톨스토이는 유럽을 여행했다. 이 시기에 동료작가들과의 마찰과 불화로 인해 창작에 대한 흥미를 일시적으로 상실했지만 《세 가지 죽음》, 《가정의 행복》, 《홀스토메르》 등 우수한 중편소설을 이 시기에 발표했다. 톨스토이의 초기 창작 활동을 마무리 짓는 작품은 《카자크 사람들 Kazaki》(1863)이다.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 올레닌이 카프카스의 광활한 대자연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원주민들 사이에서 체험하는 문화 차이, 자기발견, 좌절을 그리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과 자연법칙에 따라 인간들의 인위적인 도덕규범이나 지식을 무시하는 카자크 사람들과의 대비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 삶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한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야나에 정착했다. 그는 영지 관리에 전념하는 한편 농노자녀들의 교육 개선을 위해 학교를 열고 교재를 만들었으며, 효과적인 교육법을 배우기 위해 유럽을 순방하기도 했다. 1862년 톨스토이는 궁정의사의 딸 소피야 베르스와 결혼했다. 그 후 약 15년 간 성공적인 영지관리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며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했다. 그의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가 쓰여진 시기도 바로 이 때였다. 《전쟁과 평화》가 민족 전체가 당면한 입장에서 역사의 필연성을 제시한다면,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개인들의 운명과 가치관에 초점을 맞췄다.

◇정신적 위기 맞으며 기독교적 무정부주의 추구

한창 절정을 구가하던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정신적인 위기를 맞는다. 1878년에 그의 인생관은 대변화를 겪는다. 삶의 참의미를 찾아 몇 년 동안 고통스러운 방황을 계속한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한 사랑과 봉사정신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사유재산제도, 일체의 정부형태, 그리고 제도권의 교회를 부정했다.

그의 새로운 신념은 일종의 기독교적 무정부주의였다. 술과 담배와 육체적 쾌락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중단하고 채식주의와 일상의 노동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이같은 사상은 톨스토이주의(Tolstoistvo)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무수한 글을 통해 자신의 박애정신과 사회사상을 전세계로 전파시켰다. 그의 추종자들은 세계 각 곳에서 톨스토이 공동체를 만드는가 하면,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야스나야 폴야나로 구름처럼 몰려 왔다.

그가 인류의 양심으로 추앙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부와 교회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졌다. 그의 작품들은 출판 금지를 당했으며, 러시아 정교회는 1901년에 그를 파문시켰다. 부인과 가족들이 톨스토이가 원하는 삶을 반대했기 때문에 가족과의 불화도 계속됐다. 그녀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80년 이전에 출판된 책들의 저작권을 획득해 큰 수입을 올렸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교훈적인 민담의 집필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부인과의 갈등은 노령의 톨스토이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몰래 집을 나와 정처 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며칠 후인 1910년 11월 20일, 아스타포보의 외딴 역에는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부랑자가 폐렴으로 죽어 있었다. 그가 바로 세계 최고의 문학가, 톨스토이였다. 그의 시신은 유언에 따라 야스나야 폴야나에 안장됐다.

◇부랑자로 떠돌다 아스타포보의 외딴 역에서 객사

톨스토이에 대한 평가는 예술가와 사상가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뤄진다. 예술가라는 입장에서 톨스토이의 위대성은 별로 논쟁의 여지가 없으나, 사상가라는 입장은 자주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사상가로서의 톨스토이는 그가 말년에 소설 대신 종교·도덕·예술·결혼·교육·노동자 문제 등에 관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존재보다는 오히려 사상가로서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예술 창조가 일종의 진지하지 못한 유희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예술과 사상은 서로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참된 삶의 의미를 자신의 모든 글에서 찾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삶의 진실을 천착하고자 했던 세계적인 대문호였던 것이다.

양과 질에 있어서 세계 최대의 걸작 《전쟁과 평화》는 1805년 제 1차 나폴레옹 전쟁 직전부터 러시아 건국 이래로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1812년 대나폴레옹 조국전쟁을 거쳐 1820년까지 15년 동안에 걸친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를 재현한 것이다. 러시아 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노불(露佛)전쟁 당시 양대군의 보로지노 벌판의 대전투,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점령, 모스크바 대화재, 그리고 프랑스군의 후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서사시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모친 가계와 부친 가계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두 가문 볼콘스키 가문과 로스토프 가문을 축으로 러시아 국민 생활의 일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 작품에 필적할만한 웅대한 규모의 문학은 세계문학 가운데서도 찾아내기 힘들다. 광대한 공간, 수많은 등장인물, 변화 무쌍한 장면, 그리고 모든 사건과 인물들의 긴밀하고 필연적인 상호관련은 개인들의 기록이 아니라 러시아 사회를 진솔하게 표현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모든 사회계층, 즉 귀족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삶을 펼쳐 보이는 러시아 삶의 백과 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에서 민중들이 펼치는 삶의 비밀이 드러난다. 종래의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적인 장르개념을 깨고 역사소설과 가정소설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19세기 유럽 소설이 해내지 못한 소설의 영역과 지평을 확장시킨 대서사시이기도 하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1805년 나폴레옹은 대군을 이끌고 유럽을 평정한 다음 러시아에 침공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임신한 아내를 시골 영지에서 은둔하고 있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나간다. 한편 그의 친구 피에르는 모스크바의 부호 베주호프 백작의 유언에 따라 전재산을 상속받고 사교계의 총아가 된다.

피에르의 재산을 탐내는 쿠라긴 공작은 품행이 문란한 딸을 피에르와 결혼시킨다.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사이 피에르의 아내 엘렌은 돌로호프가 놀아나고, 피에르는 명예회복을 위해 돌로호프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 결과 돌로호프가 부상을 입자 피에르는 선악과 삶의 의미 문제로 고뇌하다가 비밀결사체 프리메이슨(자유석공조합)에 참가한다. 그 과정에서 피에르는 로스토프 백작의 딸 나타샤와 가까워진다.

한편 전쟁에 나간 안드레이는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 리자는 아들을 낳고 죽는다. 안드레이는 우연히 로스토프 백작 집을 방문했다가 생명력 넘치는 아가씨 나타샤를 만나게 된다. 그 해 겨울 무도회에서 재회한 그들은 서로 사랑을 느끼고 약혼을 했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결혼을 미루고, 안드레이는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사이 나타샤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유부남 쿠라긴의 유혹에 넘어가 도망갈 계획까지 했다. 이 염문으로 안드레이와는 파혼한다. 1812년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안드레이는 보로지노 전투에서 중상을 당한다. 나타샤는 부상당한 안드레이를 발견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간호하지만 그는 죽고 만다. 피에르의 아내 엘렌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부정한 행위를 계속하다가 낙태약을 잘못 먹고 죽는다.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마침내 끝나고, 나타샤와 피에르는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The more

◇ 글쓴이 조주관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학대학원에서 학위논문 《제르좌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으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러시아 문학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유럽어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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