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focus]5공初 경제수석 '김재익 신화'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57분


《동아일보는 21, 22일 ‘심층리포트’를 통해 경제정책의 난맥상을 보도하면서 ‘김재익 신화’를 대안으로 소개한 바 있다. 많은 독자들은 “이런 경제난국에 김재익(金在益) 경제철학을 집중 조명해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80년대 초반 2차 오일쇼크의 어둠 속에 출범한 제5공화국. 김재익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실천한 경제정책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더욱이 통치자가 경제정책 입안자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준 점은 경제정책 성공의 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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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김재익 경제수석은 전두환(全斗煥)대통령에게 물가안정을 위해 84년 정부예산을 동결할 것을 건의했다. 김수석은 82년에도 같은 정책을 추진했으나 당시 여당인 민정당은 물론 정부 내에서조차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는 반대에 부닥쳐 실패했다. 그러나 김재익은 83년이 되자마자 다시 예산동결을 들고 나왔고 마침내 대통령 결심을 얻어냈다.

전대통령은 예산동결을 반대하는 민정당측에 김재익으로부터 배운 ‘논리’대로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데 여당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느냐. 예산동결 때문에 선거에 진다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고 강조했다. 예산동결은 경제수석 김재익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중항쟁 무력진압으로 출범한 5공화국은 정치적으로는 쿠데타 정권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경제측면에서만 보면 다소 다른 평가도 가능하다. 우리 경제가 이 시대에 성장제일주의의 관 주도 경제에서 안정과 개방, 자율을 축으로 하는 민간 위주 경제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예산동결과 추곡수매가 및 임금억제정책, 수입자유화정책, 전자 및 정보통신혁명,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금융실명제 실시로 대표되는 경제개혁정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5공정부의 뼈를 깎는 안정화정책은 80년대 후반 3저 효과라는 해외발 호재까지 겹치면서 국제수지흑자, 높은 경제성장, 물가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86년에서 88년까지 3년간 연평균 12%의 성장률과 286억달러의 흑자를 올렸다. 물론 노동운동을 비롯한 극심한 민주화운동 탄압 등의 ‘그늘’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김재익의 경제철학은 ‘안정 자율 개방’으로 요약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개발독재의 유산이 짙게 깔려있던 80년대 초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그는 절대권력자였던 대통령에게 몇 가지 기본적인 경제원리를 주입시켰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정부가 힘으로 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개인이든 국가든 흑자를 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고 나가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물가가 더 올라버리면 실질임금이 줄어들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제원론’이지만 실제 정책수립과정에서는 너무나 자주 무시당하는 것들이었다.

80년대 초 우리 경제는 대 위기를 맞고 있었다. 관 주도 성장제일주의로 달려온 박정희(朴正熙)개발독재의 한계가 나타난 데다 79년의 2차 오일쇼크 여파, 10·26사건 등이 겹치면서 물가폭등과 경기침체에 외환부도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비상상황에서 경제수석이 된 김재익은 당장은 어렵더라도 우리 경제의 체질을 길러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70년대 후반 부동산투기와 주가급등 등으로 흥청대던 사회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가안정으로 대표되는 경제안정화정책이 강도 높게 추진됐다. 8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이런 정책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앞날을 바라보는 김재익의 혜안도 평가받을 만하다. 수입품만 사용해도 매도당하던 당시에 그는 이미 경제개방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대외적인 압력에 밀려 시장을 열기 전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또 전자 및 정보통신산업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인식도 갖고 있었다.

김재익이 80년대 초 선택한 정책을 지금 다시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재익 신화’가 지금도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구체적 정책내용이 아니라 정치논리나 인기영합적 정책 대신 먼 안목으로 진정한 경제체질 강화에 노력했던 한 경제관료의 모습이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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