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노갑 퇴진' 이후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03분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위원직 사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민주정치가 여론에 뿌리를 둔 이상 그가 최고위원직을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은 대의에 맞지 않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는 국정개혁’을 말했을 때 당이든, 정부든, 청와대든 바로 공적 조직 구조 차원에서 그 방향을 숙의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집권당은 그보다 공조직과 사조직, 실세와 비실세, 가신그룹과 개혁파 등이 엉켜 비난하는 모습만 보였다.

그런 것들은 국민 눈에 침몰 직전의 배에서도 지휘권을 다투는 모습으로 비쳤다. 시스템의 정치가 살아 있었다면 그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총재인 대통령이 위기감을 느껴 무슨 얘기든 듣겠다며 최고위원들을 불러 하게 한 말들이 자성의 계기로 작용하기보다 내분의 불길로 번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권위원의 퇴진을 불러온 최근의 민주당사태는 민주적 시스템에 의한 정치로의 회귀가 시급함을 다시금 일깨웠다. 집권세력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사적(私的) 구조, 특정인맥에 몰려 있고 언로마저 그 틀 안에서 막혀 있다면 개혁은 구호로만 존재하고 오히려 권력다툼만 심화할 것이란 교훈도 주었다.

권위원의 퇴진 이후를 우리가 주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번 일을 겪고도 당을 다시 동교동계 등 특정계보나 사람 중심으로 운영하려 하거나 은밀하게 비공식적 라인을 가동하려한다면 제2, 제3의 권노갑사태는 또 올 수 있다. 그리고 ‘제2의 김현철’ 소리가 나올 정도로 특정실세가 인사 이권에 개입했다는 얘기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특히 권위원이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여러 소문과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가 또 어떤 ‘역할’을 수행한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권위원의 사퇴발표와 함께 김대통령을 대리해 민주당을 이끌어온 서영훈(徐英勳)대표도 어제 그 직을 내놓았다. 그동안 그가 “대표에게 힘은 실어주지 않고 잘잘못만 따지려든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도 바로 시스템 정치의 부재를 탓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대통령이 할 일은 분명하다. 당부터 제 자리로 돌려놓고 청와대, 정부도 그 뒤를 이어 제 권한만큼 제 할 일을 할 수 있게 집권구조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춘 인물기용을 의심사지 않게 해야 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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