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권노갑 퇴진론' 안팎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42분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 2선 퇴진론’에 대해 여권 일각에서조차 한두 사람의 ‘용기’ 혹은 ‘만용’으로 치부하고 있으나, 이번 파문의 저류를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뭔가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권노갑 퇴진론’ 파문이 결코 봉합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파문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소외된 중진들’의 반란〓파문은 이미 오래 전에 예비돼 있었다. 11월 17일 검찰수뇌부 탄핵안 처리가 무산된 직후 당직에서 소외된 3선 이상의 일부 민주당 중진들이 술렁거렸다. ‘동교동계가 당이 직면한 위기의 1차적 원인제공자이자 당 쇄신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에 공감대를 갖고 있는 인사들을 규합해 ‘궐기’를 추진하려 했던 것.

이를 감지한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20일 한 중진의원을 만나 집단행동을 극구 만류했지만 이들은 22일 모임을 강행했다. 모임에는 안동선(安東善) 이윤수(李允洙)의원 등 11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비공개로 ‘비장한 내용’의 건의문까지 만들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후문. 건의문 내용은 비밀에 부쳐졌지만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이 2일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발언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선 모임의 ‘제2의 김현철’ 발언〓중진들의 집단행동은 지속성을 띠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 쇄신을 강력히 요구하는 기류는 그대로 1일 초선의원 모임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는 권최고위원을 빗대 “‘제2의 김현철(金賢哲)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정동영 최고위원이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중에 나도는 얘기라며 ‘제2의 김현철’ 발언을 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초선의원 모임은 잇단 초강경 발언으로 한때 분위기가 경직되기도 했다고 한다. 일부 참석자는 “너무 심한 발언이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다는 후문. 이와 관련해 동교동 구주류의 한 인사는 “모든 초선의원들이 권최고위원의 퇴진론에 동조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소수만이 문제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선모임 분열 조짐〓‘권노갑 퇴진론’ 파문이 확산되면서 초선의원 모임 내부에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초 추진키로 했던 작업들도 ‘일단 유보’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초선의원 모임의 일부 의원들은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쪽에 당한 것 아니냐”며 흥분하고 있다는 것. 한 의원은 “새로운 구성원들로 모임을 다시 만들자는 의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사태를 잘 마무리지으라”는 김대통령의 뜻도 당장의 집단행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다 “초선의원들이 또 그런 식으로 나오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동교동 구주류 쪽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에 따라 이재정(李在禎)의원이 1일 모임의 논의사항을 건의문으로 정리해 청와대에 전달하는 것도 당장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들은 건의문에 당정 일선에서 동교동계를 퇴진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당정쇄신안을 담을 예정이었다.

초선의원 모임의 한 의원은 “현 상황에서 모임을 다시 가지면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모임을 삼가고 있다”면서 “1대1 대면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개인적으로만 의견을 나누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분간 지켜보자는 데 묵시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라며 “따라서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가 있는 동안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들 초선의원은 “당을 쇄신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기대한 만큼 변화가 없을 경우 다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한화갑의원 '배후설' 일축▼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측에 의해 한때 ‘권노갑 2선 퇴진’ 주장의 배후로 지목됐던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8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배후로 지목된 것과 관련해 “말이 아니면 하지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권최고위원의 퇴진을 건의한 정동영(鄭東泳)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인은 누구든 소신을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용히 제기됐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최고위원 주장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인가.

“필요성을 인정한 게 아니고 방법론에 대해 얘기한 것이다.”

―대통령이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왔나.

“그렇지 않다. 내가 전화를 걸어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최고위원들이 당의 단합을 위해 힘써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도 전화를 걸어와 ‘당의 단합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동교동계 2선 후퇴 주장에 대한 생각은….

“사실은 나도 동교동계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정치인의 기본 자세다.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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