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거물 변호사들의 '은밀한 변론'

  • 입력 2000년 12월 7일 19시 01분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陳承鉉)씨 금융비리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이른바 거물 변호사들의 ‘로비성 변론’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사건 수임에서 변론 행태에 이르기까지 불법 편법투성이다. 진씨측과 이들 변호사 사이에 오갔다는 억대의 돈도 정상적인 수임료로 보기 어렵다.

검찰은 진씨의 비자금 사용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씨측이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고검장 등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들을 접촉하면서 수임료로 7억여원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진씨의 구속영장에는 판사 출신과 사법연수원을 거쳐 바로 개업한 변호사 등 2명의 변호인 이름만 기재됐고 검찰 출신 변호사의 이름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들 거물 변호사는 수사팀에 전화를 거는 등의 방법으로 ‘은밀한 변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검찰에 선임계도 내지 않고 사건해결을 도모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변론이 아니라 불법 로비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가 커지자 엊그제 검찰 최고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가 진씨의 변호인을 사임했다고 검찰에 알려왔다는 보도가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선임계를 낸 적이 없으면서도 이제 진씨 사건에서 손을 뗐다고 검찰에 알린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사단계에서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정식으로 선임계를 내지 않고 검찰 내 인맥을 통해 은밀하게 ‘변론’을 한 뒤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아왔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이른바 거물급 변호사들의 그릇된 행태가 선량한 다수 변호사들의 이미지를 흐려놓는다.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 변호사회를 경유해 검찰이나 법원에 위임장을 내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으니 엄청난 돈을 받고도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은밀한 변론이 검찰의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수사초기 진씨 구명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고 이 때문에 시간여유를 갖게 된 진씨가 각종 증거를 은폐해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와 재야 법조인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 변호사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한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검찰은 로비성 변론에 응하지 않는다는 자정선언과 함께 실천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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