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북적대는 아동보호소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6분


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직후 빈번했던 ‘어린이 버리기’ 현상이 다소 뜸해졌는가 싶더니 최근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경제상황의 악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버림받는 아이들은 미래에 우리 공동체의 불안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더욱 치밀한 사회적 관심이 아쉬운 실정이다.

▽아이 버리기 실태〓18일 오후 4시 아동복지시설인 부산 사하구 감천동 성방지거애육원.

나흘 전 이곳에 들어온 이경빈(4) 성빈(3) 형제는 보육사들의 눈을 피해 인근 도로쪽으로 달려가면서 연신 “할아버지”를 불렀다.

“내일이면 할아버지가 오신다”는 보육사의 달램에 겨우 울음을 그친 경빈이 형제는 지난달 실직한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마저 행방불명돼 생계조차 어려운 할아버지가 이곳에 맡겼다.

부산지역의 경우 현재 21개 영육아시설에 1512명의 어린이가 수용돼 예년보다 그 수가 크게 늘었다.

부산 연제구 연산4동 부산시 아동일시보호소의 이모양(10)과 남동생(6)은 홀어머니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다 구속되면서 지난달 이곳에 왔다. 이들은 입소 후 말이 거의 없어져 보육사들의 애를 태운다. 그나마 형제나 자매가 함께 수용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혼자 맡겨질 경우에는 충격에서 헤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난달 말 20대 후반의 어머니가 “화장실에 갔다 올테니 아이를 좀 봐 달라”며 부산진구 부전1동 모양복점에 맡긴 후 나타나지 않아 이곳에 온 박준서군(2)은 하루종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광주 송암동 무등육아원의 박모군(10)과 남동생(4)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어머니마저 가출해 마을주민들이 올 5월 이곳에 맡겼다. 형 박군은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육아원측이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경남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창원시 사파정동 동보보육원의 경우 최근 3개월 사이 7명이 늘어 75명으로 증가했으며 마산시 회원구 구암2동 마산인애원도 올 초에 비해 6명이 늘어난 74명이 생활하고 있는 등 도내 25개 아동복지시설의 입소 인원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동보보육원에 수용된 민주양(7)과 민호(3) 민식(2)형제 등 3명의 오누이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어머니가 가출한 뒤 아버지마저 어디론가 떠나버려 할머니가 이곳에 맡긴 경우다.

▽문제점과 대책〓울산의 유일한 양육원인 남구 무거동 울산양육원에는 97년에 비해 40% 나 증가한 112명이 수용돼 있으며 △대구 20개 시설 1118명 △대전 11개 시설 540명 △강원 10개 시설 570명 △제주 5개 시설 298명 등으로 대부분 올 초보다 10% 정도씩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시설의 보육사들은 “버려진 어린이 대부분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실어증과 자폐증 대인기피증까지 보이고 있다”며 “아이들을 맡긴 뒤 전화는 고사하고 다시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부산 성방지거애육원 조광현(曺光鉉·73)원장은 “최근 아이들을 맡기기 위해 찾아오거나 상담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보호중인 아이 대부분은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로 보살필 가족이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아동복지전문가인 부산대 문선화(文宣和)교수는 “어린이를 버리는 행위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방임이자 학대행위”라며 “아동복지는 부모와 아이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못먹고 못살아도 아이를 데리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책”이라고 강조했다. 문교수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육아가정에 대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지원을 확대해 주는 방안 등도 하나의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광주·창원〓조용휘·정승호·강정훈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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