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뱀 사냥과 조직문화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59분


#이야기 1―1

대기업의 리더십교육 담당 김석우박사가 뱀을 잡는 유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세기말을 기준으로 빅3 대규모기업집단의 사원들이 각각 모여 있다. 갑자기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왔다. 어떻게 대처할까.

A기업 사원들은 우선 팀을 나눠 뱀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의해 의견을 내고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채택해 모든 팀이 일시에 달려들어 뱀을 잡는다. B기업 사원들은 우선 회장께 보고하고 지시에 따라 대처한다. C기업의 경우 앞뒤 가릴 것 없이 먼저 본 사람이 때려잡는다.

기업 문화를 빗댄 설명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 B기업은 수장이 물러났고 주요부문의 부도상태에서 몸을 맡길 외국기업을 찾고 있다. C기업은 뿌리기업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자구책을 마련 중이나 내부 갈등이 만만찮다. A기업은 일부 업종의 흑자 속에 국내 유일의 초강대기업이란 평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조직력’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적지 않다.

#이야기 1―2

김박사의 이야기를 D기업에 있는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그 친구는 “A, B, C기업은 그래도 뱀을 잡기는 하는 경우”라며 다른 예를 추가했다.

E기업의 경우 뱀이 들어 왔지만 아무도 위험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잘 잡나 보자”며 옆 사람과 수군수군한다. 일부는 ‘헛뱀’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뱀이 동료를 물었는데도 ‘경상’이라고 믿는다. 사상자가 쌓이고 나서야 “왜 누군가가 ‘독사’를 잡지 않았느냐”고 책임소재를 따진다.

F기업은 E기업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F기업의 경우 뱀이 들어온 사실을 일부 구성원이 아는 순간, 벌써 다른 기업에서 휴대전화로 “뱀이 들어 왔다는 데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 온다. 상당수의 구성원은 이때까지도 뱀소동을 모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뱀이 아닌 ‘카멜레온’이 들어온 것이란 엉뚱한 믿음이 세를 이룬다.

#이야기 2

거의 모든 식품에 반드시 들어가는 제품을 만드는 G기업에서 판매를 담당하다 최근 전직한 분이 들려준 ‘멀지 않은 과거’의 거래기업들에 관한 이야기. 이들 거래처는 동일업종이다.

H기업의 경우 납품한 뒤 월말에 수금하러 가면 담당자는 재고량이 얼마인지를 모른다. 재고 체크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다. 담당직원은 “당신이 재고량을 직접 체크해 우리가 쓴 양이 얼마인지 알려주면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한다. 덕분에 수금실적은 좋았지만 그 기업은 해당업계 선두주자였음에도 사세가 급속히 기울었다.

후발인 I기업의 구성원들은 커미션을 절대로 받지 않는다. 계산이 분명하다. 지금 그 기업은 잘 나가고 있다.

J기업에 납품하려면 반드시 친인척을 거쳐야 한다. 커미션은 10%인데 친인척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챙긴다. 그 기업은 부도가 났다.

K기업은 커미션을 받기는 하는데 그 돈도 공식수입으로 잡아 회사에 입금한다. 지금도 잘 견디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속해 있는 조직의 문화는 어떻습니까.

홍호표<부국장대우 문화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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