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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10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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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 스크랩을 뒤지다보니 도서관 풍경을 스케치한 기사가 눈에 띄네요. 입시철이라는 핑계를 대고 옛날 도서관이나 한번 구경갑시다. 1980년 6월17일 동아일보 기삽니다.
< 우산을 받쳐든 채 또는 실비를 맞으면서 `좌석 한자리'를 찾아나선 면학의 대열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이었다. 철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지리한 장마철에 접어든 17일 아침 남산 국립중앙도서관 입구에 늘어선 학생 시민 등 일반 열람실 입실 희망자들의 어깨는 비맞는 나뭇가지처럼 무겁다. 3백92석뿐인 일반열람석을 차지하기 위해 변두리에서는 통금해제 직후부터 시내에서도 새벽 5시부터 집을 나서 달려왔으나 입장시간인 오전 7시경에는 벌써 정원의 3배 가량이 줄지어 섰다. >
네, 옛어른들은 정말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통금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저 향학열을 보세요.
기자는 < 전국의 국공사립 도서관은 1백12개소에 좌석은 3만4천 5백여개 뿐. `1천만 학도'에 비해 너무나 인색한 시설규모인 채 좀처럼 늘어날 줄을 모른다 >는 보고도 하고 있군요.
어? 그런데 기자는 < 올 여름 도서관 입구는 전에 없이 붐비는 것 같다 >고 쓰고 있습니다. 왜 하필 그해 여름에?
그렇습니다. 그때는 대학가에 휴교령이 떨어져 있을 때죠. 저도 친구들과 서울에 있는 정독도서관(정말이지 마땅히 갈데가 없었습니다)과 근처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심심해서 영화라도 봐야 했습니다), 또 근처에 있는 삼청공원(소주 몇병 들고 더위 식히러 갔습니다) 등지로 나돌던 시절입니다.
각설하고, 기사나 더 살펴봅시다. 대학생 두명의 멘트가 있네요.
<요행으로 대기번호를 받고 대기실에 앉아 전공서적을 보고 있던 K대 건축과 박모군 : 가을 국가 기술 자격실험 준비가 제대로 안돼 큰 걱정이다. 도서관에서 혼자 시험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교수들에게 직접 배우는 학교강의만큼 충실하지는 못한 것 같다.
도서관 입구에 가방을 세워둔 채 비를 맞고 서있던 S대 1년 김모군 : 공부방 한칸 없이 게딱지처럼 옹색한 집을 뛰쳐나와 거리에 나서면 괜히 이것 저것 걸리는 일만 많고 오해받는 일도 많아 전에는 들르지도 않던 도서관을 찾아왔지만 하늘의 별따기 같은 자리를 얻을 것 같지도 않고 또 꼭 자리를 얻어 앉아 있으려고 나왔는지 그저 막연하다.(기자분 문장이 무지하게 길군요)>
이제 기사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 숨막히는 도심 한가운데서 조용히 머리를 식혀가며 면학에 열중할 `한자리'를 찾거나 면벽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얻는 일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더워도 갈 곳이 없지만 돈을 들여 `脫 도시'의 바캉스라도 떠날 형편은 더욱 못되는게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 지금쯤 텅비어 있을 학내 도서관을 생각하면서 마음은 우선 도심에의 망명, `서울 엑소더스'를 갈망한다. 어느 해 보다 더욱 무더위가 계속되리라는 올 여름 기약 없이 줄지어 서야 할 면학의 대열은 적지않게 고달플 것 같다. >
저는 이 기사를 쓴 기자도 숨막혀 하고, 고달퍼 하고, 머리 식히고 싶고, 면벽하고 싶고, 탈도시하고 싶고, 망명하고 싶고, 엑소더스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족 :
사실은 가스똥 바슐라르의 매혹적인 말, `저 높은 하늘에 있는 천당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를 비틀어 `한국의 도서관은 거대한 입시-취업 준비소가 아닐까'라는 글을 써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제 열 손가락은 제멋대로 놀았습니다. 유감입니다.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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