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만의 종교이야기]문지방에 서있다고 구박 말라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49분


어릴 적에 문지방 위에 서있다가 부모님에게 꾸중들은 일이 있다. 왜 야단을 맞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 다음부터 문지방 위에 서있는 것은 두려움과 함께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 방과 저 방 사이의 경계에 서있는 것은 쉽지 않고, 오래 머물 수도 없다. 간혹 다칠 수도 있다.

사회적인 공간이든 물리적인 공간이든 공간의 구획이 있는 한,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있게 마련이다. 이 사잇 공간은 이쪽과 저쪽 모두이기도 하고 또한 어느 쪽도 아니기도 하다. 무정형의 공간이 구획을 통해 질서가 잡힌다면, 사잇 공간은 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무질서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질서에 저항하면서 질서에 ‘틈’을 내고 있는 이 공간은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접근금지의 울타리를 치거나 팻말을 달아 놓고 이 경고를 무시하고 접근하는 자에게 징벌을 가한다. 질서의 영역에 무질서가 침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점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경계의 영역이 있다. 예컨대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 있는 사춘기는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는 시기이다. 기성세대가 가끔 사춘기의 청소년을 곱지 않게 보는 것도 이 시기 특유의 ‘뒤죽박죽’이 지니는 위험성 때문이다.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정해진 자리에 ‘얌전하게’ 있을 수 없는 그들은 바로 무질서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독신과 결혼생활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약혼 기간도 두 남녀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밀고 당김이 이루어지므로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는 시기이다.

◇인간에겐 청소년기 해당

이와 같이 시간적, 공간적 과도단계는 애매함과 위험에 가득 차있다. 그만큼 활화산같은 에너지가 충만해 있기도 하다. 이런 삶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고 또 거기에 데이지도 않으면서 잘 활용하기 위해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마련한 장치가 있다. 바로 통과의례가 그것이다. 통과의례는 공간적인 이동이나 시간적인 전이의 고비고비마다 행해지는 의례이다. 사회적 지위가 바뀌었다거나, 질적으로 다른 영역으로 진입할 때 통과의례가 행해진다.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창조위한 혼돈의 시기

통과의례는 이전의 단계와 단절하고 새로운 단계로 통합되기까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고 과장한다. 통과의례의 참가자들은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음에 두려워 한다. 그러나 이 떨림과 혼란의 시기는 참가자들의 존재를 변형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문지방에 서있는 아이나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새로운 창조를 예비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이 혼돈을 구현하고 있다. 그들을 구박하지 말라.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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