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피플]서울대공원 사육사 엄기용씨

  • 입력 2000년 11월 8일 19시 13분


입동(立冬)이 지나며 불어닥친 찬바람에 모두가 움츠리고 있는 요즘. 그러나 제철을 만난 게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백두산 호랑이 ‘낭림’. 93년 4월 자강도 낭림군 산악지역에서 포획됐기 때문에 이 정도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지난달 3일부터 일반에 선보인 낭림은 찬바람이 오히려 시원한 듯 포효하고 있다.

85년부터 15년째 대공원 맹수사육사로만 일해 온 엄기용씨(48)가 남북한 야생동물 교류사업의 하나로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들여온 낭림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월. 그 때부터 엄씨는 낭림을 묵묵히 뒷바라지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죠. 늑대인 줄 알았을 정도였어요. 북한에 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공원에 들어 온 뒤 낭림은 그동안 매일 닭고기 2㎏, 쇠고기 1㎏, 토끼 한 마리를 먹어 치웠다.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젠 체중이 150㎏까지 나간다. 비슷한 종류인 시베리아 호랑이 암컷의 몸무게가 120㎏ 정도인데 비하면 큰 편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다른 호랑이에 비해 골격이 큰 데다 검은 줄무늬가 훨씬 선명하지요. 더구나 잘 생겼어요. 과연 민족의 ‘영물(靈物)’이라고 할 만합니다.”

엄씨가 관리하는 맹수는 호랑이를 비롯해 재규어, 퓨마, 흑표, 표범 등 5종류. 이 가운데 단연 호랑이가 최고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자는 무리를 지어 살지만 호랑이는 철저히 혼자 다닙니다. 그래서 더 용맹스러운 것 같아요.”

요즘 그에게는 또 하나 특별한 일이 생겼다. 20여일 전 시베리아 호랑이 ‘선아’가 낳은 새끼 호랑이의 ‘엄마’역을 맡아야 하기 때문. ‘선아’는 새끼를 낳은 뒤 나 몰라라 내팽개쳐 졸지에 엄씨가 이를 떠맡게 된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밤늦은 시각 하루 네 차례나 새끼 호랑이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 잔일이 계속되고 있다. 새끼 호랑이는 태어난 지 40일 동안 분유를 먹다가 차츰 날고기를 섞어 먹으며 100일 때부터 본연의 식성을 되찾게 된다.

“제가 키운 새끼호랑이가 벌써 8마리나 돼요. 이젠 별로 힘들지도 않아요.”

엄씨는 맹수들과 어울리며 사는 자신의 인생이 후회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맹수는 제 목소리를 듣고 저를 알아보지요. 관람객들이 많이 있을 때 잠만 자던 맹수들이 내가 이름을 부르면 벌떡 깨어납니다. 말 못하는 짐승과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매력을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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