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들여다보기]한글 망치는 방송자막 싸구려 글자체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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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한글 디자인 문화를 살려내라

한글날을 맞이해 세종로에 ‘ㅎ’ 문양의 발광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디자이너 안상수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영어로 뒤범벅되어 있는 간판 숲 속에서 한글을 상징하는 ‘ㅎ’문양은 단연 돋보였다. 한글이 이렇게 훌륭한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올해도 각 방송사마다 한글날을 맞이해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8일 방영된 MBC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위대한 문자의 탄생’은 한글이 문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점과 선, 원을 기본으로 만들어져 디자인적 요소가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한지(韓紙) 위의 수묵화로 표현한 것은 신선해 보였다. 우리가 매일 쓰면서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방송 프로그램이 한글과 그 문화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문화가 제대로 꽃피려면 무엇보다 공적 매체로서의 방송에서 한글을 제대로 대접하고 한글의 올바른 사용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방송은 한글을 잘못 사용하거나 외래어의 지나친 남용을 조장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문제점은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해피투게더’(KBS2) ‘논스톱 4’(MBC) ‘세븐데이즈’(SBS) 등의 영어제목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이다. 아름다운 일요일보다는 ‘뷰티풀 선데이’(SBS)라고 쓰고 읽어야 더 아름다워 보이고 그럴싸해 보이는 것일까. 슬프지만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 방송의 프로그램 제목과 순간순간 반복되는 한글 자막에서 디자인적 요소가 완전히 무시된다는 점이다. 컴퓨터 문자발생기에 존재하는 한정된 글자체만이 기계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방송프로그램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자막에 싸구려 글자체만이 범람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한글을 더욱 값싸게 보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 바르게 쓰기와 말하기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으로 그 독창성과 미려함을 인정받는 한글의 멋진 디자인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방송이 무엇인가 역할을 담당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붉은색과 태극기의 영상적 요소가 새롭게 재발견되어 디자인화 되고 있다. 이제는 한글의 디자인적 요소를 발굴하고 숙성시켜야 한다. 방송사에서도 세종로의 ‘ㅎ’문양의 조형물 같이 한글을 이용한 보다 창조적인 기획을 시도해야 한다. 한글날 특집프로그램 하나 방송하기 보다는 매일매일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제목과 자막에서 보다 미려한 한글의 디자인적 요소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창현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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