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헌준/국가 지원 학술연구 질적 평가를

  • 입력 2000년 10월 29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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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지원하는 연구비 지원사업은 모든 재원이 국민의 세금에서 비롯되므로 국가의 부의 창출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있다. 따라서 지원사업의 구체적 운용방법은 그 목표 아래 이뤄져야 하며, 연구비 지원 결과의 판단기준인 연구보고서 및 논문의 판단 여부도 같은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연구비 지원사업은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획기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정부, 대학 그리고 연구소를 포함한 실질적인 연구그룹 및 연구지원기관이 노력한 결과다.

그러나 간과돼온 중요한 사실이 있다. 과연 논문의 양적 증가가 어느 정도 목표에 부합하느냐는 문제다. 논문의 질적 성장이 도모되지 않는 양적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사실 국가의 부의 창출 및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연구의 창의성, 고도의 수준 그리고 연구의 다방면에 걸친 활용 가능성이다. 즉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이야말로 연구결과에 대한 판단기준이 돼야 한다.

오늘날 미국의 발전에서 기초과학 내지 기초학문의 기여도는 미국 대통령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흔히 기초과학은 이른바 ‘묻지 마 투자’의 특성을 갖고 있다. 왜냐 하면 기초학문이야말로 질적 성장 없이는 이뤄질 수 없고 질적 성장은 장기적 안목에서 판단될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양적 성장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 질적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장기적 노력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 연구비 지원사업의 핵심 문제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로 접근돼야 한다. 단순히 연구 종료 기간 내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연구자는 연구 종료를 선언하고, 연구기관도 연구 관리를 종료하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며 안이한 방법이다.

물론 연구 기간 내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연구 수혜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학생의 연구보고서처럼 정해진 기일에 제출하느냐 않느냐로 연구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양적 성장만 추구해온 우리의 전형적인 조급증과 획일주의의 산물이다.

이미 우리나라 일선 연구자들에게 그들의 연구결과에 대한 질적 판단은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의 사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 기간을 연기해 그 결과의 질에 대한 숙고가 비록 연구 기간의 유예로 발전하더라도 따뜻한 박수로 격려하는 사회를 이루도록 연구지원기관이 노력하는 분위기가 부럽다.

물론 약속한 연구기간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은 국가연구비 수혜자로서의 의무이다. 다행히 최근 학술진흥재단 통계에 따르면 미제출자는 98년도부터 급격히 줄고 있다. 이는 연구결과에 대한 무책임한 수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단순하게 획일주의와 조급성이라는 잣대로 연구자나 연구지원기관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진정한 국가연구비 지원사업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박현준(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지원부장·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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