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권배/일본 축구를 배우자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50분


국가 대표끼리의 국제 게임은 많은 사람을 애국자로 만든다. 밤잠을 설치며 승리를 기원하지만 승패의 세계는 냉혹하다. 이번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의 졸전은 우리를 짜증나게 만든 반면에 일본 축구는 괄목상대할 만한 활약을 보여 차라리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을 정도다. 자존심이 상하고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다.

일본 축구가 확 달라졌다. 우리보다 기본기가 충실해 1대 1 돌파에 의한 공간 확보가 우수하고 선진 축구를 구사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몇십년을 내다보는 대계(大計) 끝에 알찬 결실을 수확하는 일본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이 부족했는 지를 곰곰이 따지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축구에 재능이 있는 민족이다. 잔디구장을 비롯한 축구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인구대국 중국을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리게 했고, 선수층이 두터운 일본과도 역대 전적에서 크게 압도하고 있다. 일본과는 민족감정이 있어서 선수들이 죽을 힘을 다해 승리를 거머쥐었고 국민은 그로부터 울분을 해소해 왔다.

그러던 한국 축구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어 야단법석이다. 항간에서는 감독과 선수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 동안 즐겨 써왔던 처방으로 근본적인 것이 아님을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같은 문제가 현재의 잘못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현 상황의 대부분은 지나온 과거에서 잉태된 것이다. 외형만을 추구하고 단기적 안목으로 실행해 온 결과인 셈이다. 각 사안에 대처하는 한일 양국의 방식과 관점의 차이가 빅 이벤트인 축구경기에서 이제 극명하게 표출된 것이다. 결과에 대해 쉽게 흥분하기보다는 우리의 허점을 축구를 통해 확인하고 근본적으로 시정하려는 성숙함이 더욱 필요한 때다.

복잡한 세상에서 각 사안의 실행에 대한 명분은 분명 존재한다. 정책의 실명제가 진정 이루어졌다면 감히 추진할 수 없을, 외형에 치우친 편협한 단견이 때때로 실행의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장기간 축적되어야 비로소 일반 국민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요즘 들어 국민은 일본 축구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일찍이 없었던 현상으로 현명한 대책이 요구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냄비 근성을 버리고 기본을 중시하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 대한 접근이다. 한국 축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기 싫어도 일본 축구를 살펴 배울 것은 배우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또 우리의 잘못된 사고와 행동이 축구 외에는 없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대학입시에서 무분별한 계열교차지원을 허용하는 것도 머지않은 장래에 국가경쟁력에서 축구처럼 졸전을 치를 것이 예상되는 사안이다. 축구를 통해서 주요사안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필요성을 새삼 깨달아 도약의 기회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문권배(상명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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