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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0월 20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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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점점 단일화되는 세계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모든 나라와 기업은 생산성 향상에 심혈을 기울인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정보화는 이를 부채질한다. 문제는 설령 한 기업에서 작년보다 생산성이 몇 배 늘었다고 해도 경쟁업체들이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기록했다면 그 노력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데 있다.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 상대평가 중에서도 적대적인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살자’는 구도다. 이 과정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총체적 건강과 인간의 존엄성, 공동체와 생태계 등에 대해 생산적이기는커녕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11일자 A15면에 보도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는 선진국 노동자들조차 정보화와 세계화 물결 속에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고발했다. 이런 지적은 이미 10월 초 동아일보가 시리즈로 보도한 ‘한국의 40대’에 대한 심층취재 내용과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40대는 급변하는 디지털사회에서 잃어버린 자기 인생과 가정의 위기 문제 등으로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6일자 A30면).
현재 우리 사회에는 매일 200명 정도의 노동자가 4일 이상 치료를 요하는 산업재해를 당하며, 매일 10명 정도가 일하다 죽는다. 그 10명 중 2, 3명은 과로로 사망한다. 13일자 A26면에 보도된 통계청의 99년 사망원인 분석을 보면 뇌혈관과 심장 질환이 1, 2위를 기록했는데, 과로로 생명을 잃는 사람들이 뇌혈관 및 심장 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두레나 품앗이로 서로 협동하며 여유롭게 일했다. 들에서 함께 일하다가 참을 먹고 졸리면 낮잠을 자기도 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 풍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외국 선교사들의 눈에 이런 모습이 ‘게으른 코리안’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사실은 노동과 휴식, 놀이가 통일돼 있었다. 이런 자화상은 일제와 미군정, 6·25전쟁 등을 거치며 ‘부지런한 산업전사’로 바뀌었고 30년 가까이 고성장의 토대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이 ‘일중독과 과로’에 시달리는 시대가 왔다.
이런 점에서 동아일보가 ‘건강’면에서 지속적으로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를 위한 기획 기사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다만 일상적 삶의 방식 및 노동 과정의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문제들과 연결돼 있는지를 세심하게 따져주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