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한국인 '미국100대' 부자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34분


한국인 '미국 100대’ 부자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세계 400대 부자와 미국 400대 부자를 선정해 발표하는 것이 14년째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세계를 통틀어 최고 부자는 630억달러를 보유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6월 발표된 세계 400대 부자에는 한국 국적으로는 유일하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28억달러로 공동 206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회장보다 많은 31억달러로 공동 184위를 기록한 미국 국적의 ‘제임스 김’에 주목한 한국 언론은 없었다.

▷포브스 최근호에 게재된 미국 400대 부호에는 제임스 김이 27억달러로 공동 94위에 랭크됐다. 포브스지는 이번 호에서 제임스 김이 바로 한국 반도체 메이커인 아남그룹 김주진(金柱津·64)회장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김이 김회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남그룹 사람들 외에 거의 없었다. 아남그룹은 얼마 전 워크아웃을 졸업한 기업의 회장이 이건희 회장보다 더 부자라면 공연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국내 언론에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김회장이 미국 100대 부자에 들어간 사연은 간단하다. 아남반도체의 미국 법인인 앰코 테크놀로지가 98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지분 26%를 소유한 김회장은 세계적인 거부로 떠올랐다. 앰코는 반도체의 조립 판매 테스트를 하는 기업으로 인텔 모토로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과 거래를 하고 있다. 필리핀에는 반도체 조립공장 5개를 보유하고 있다. 아남반도체는 앰코를 통해 들여온 21억달러의 외자 덕분에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김회장의 부친인 김향수(金向洙·88) 아남그룹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반도체 시대를 연 선각 기업인이다. 4대 국회의원을 하다 4·19혁명이 터지는 바람에 쉬다가 일찍이 반도체에 눈을 떠 아남그룹을 일구었다. 초창기에 아남이 어려워지자 장남 김회장은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다 그만두고 아남의 미국 판매법인 앰코를 설립했다. 아들이 만든 미국 법인이 아버지가 창업한 모기업을 살렸고, 아들은 미국 100대 부자의 반열에 들었다. 부자 2대에 걸친 모험적 기업가 정신과 글로벌화의 성공 사례이다.

<황호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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