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체조]호르키나, 순간에 날아간 5관왕 꿈

  • 입력 2000년 9월 20일 18시 38분


‘순간의 실수에 공든 탑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헝클어진 머리에 주름진 이마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러시아의 체조 여왕 스베틀라나 호르키나(21)는 믿기 힘든 현실 앞에 몸서리쳤다.

19일 밤 슈퍼돔에서 열린 시드니올림픽 체조 여자 단체 결승. 호르키나는 주종목인 이단평행봉에 자신 있게 올라섰다. 이 종목은 자신에게 세계선수권 2연패와 유럽선수권 4연패,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그야말로 ‘밥’. 17일 벌어진 예선에서도 1위였다.

그래서 너무 얕봤을까. 아랫봉에서 윗봉으로 뛰어오르다 어이없게 봉을 놓쳤다. 중심을 잃고 떨어져 매트에 무릎을 꿇었다. 전광판에는 최악의 스코어인 9.0점이 새겨졌다. 예선에서도 9.850점을 받지 않았던가. ‘맏언니’가 흔들리자 후배들도 휘청거렸다. 이날 18세 생일을 맞은 엘레나 자모로드치코바가 평균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등 실수가 쏟아졌다.

‘추락하는’ 호르키나에게 실낱같은 만회의 기회가 있었다. 마루운동 마지막 선수로 나서 역전을 노린 것. 1위 루마니아를 추월하기 위해서는 9.992를 기록해야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펼친 호르키나는 최고 점수인 9.787점의 높은 스코어를 얻었으나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

결국 러시아는 96애틀랜타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은메달에 머물렀고 아쉬움의 한가운데는 바로 호르키나가 있었다.

준우승의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체조선수로는 황혼이라는 20세를 넘겨가며 매트를 지킨 호르키나. 4년 세월을 기다린 그는 찰나의 실수 하나로 모든 꿈을 날려버렸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일까.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도 호르키나는 평균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우승을 놓치는 빌미를 제공한 바 있어 더 큰 상처로 남게 됐다.

불운을 곱씹은 호르키나는 개인종합 뜀틀 이단평행봉 마루운동 등 남은 4개 종목에 다시 도전한다. 그는 과연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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