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세계가 주목한다]<5·끝>전문가 대담

  • 입력 2004년 7월 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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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이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은 여전히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하고 있고, 그간의 준비를 토대로 전 세계에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알리기 위한 시도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학자 3명이 모여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정배=어느 지역에 있건 우리의 고구려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는 것은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다만 중국의 경우 ‘동북공정’과 맞물려 아전인수식으로 역사를 해석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도 양심적인 학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료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면 그들도 역사적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주장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존중해 온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비춰 봐도 부끄러운 일이다.

▽문명대=중국은 지금 제국사관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에서는 이런 것이 통했지만 앞으로의 역사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자기들이 오히려 그런 관점을 가지려는 것은 사관(史觀)의 후퇴란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북한과 중국 양쪽 유적 모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으니 앞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박아림=특히 중국 지역의 고구려 유적은 오랫동안 방치돼 훼손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이긴 하지만 중국 정부가 고구려 유적에 관심을 갖고 정비를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북한, 중국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벽화의 보존을 위해 공동작업을 할 여건이 마련된 듯하다.

▽김=중국은 주로 왕릉, 산성 등 포괄적 문화유산이 지정된 데 반해 북한은 고분만 등재됐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북한은 고분 외에도 산성을 포함한 고구려의 문화유산 전반에 더 신경을 써서 세계문화유산 등재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미술사적으로 볼 때 우수한 고구려의 후기 고분은 대부분 평양 지역에 있다. 앞으로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중국 고분벽화의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고구려 벽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묘의 형식이나 벽화의 내용과 구성, 벽화의 사상적 측면 등을 보면 처음부터 입지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고구려 고분벽화는 동아시아 미술사에서 우리 미술의 독자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분야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중국의 것과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체의 벽화발전 흐름 속에서 그 특징을 찾아내 보여준다면 중국의 역사 왜곡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고구려 벽화를 통해 한국미술사에 대한 서양인들의 시각 자체를 바꿔 놓곤 했다. 한국의 다른 전통미술 작품들을 보여주면 그냥 평범하게 “좋다”고 하던 이들이 고구려 고분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면 “이것이 정말 한국 것이냐”고 하면서 감탄한다. 이런 고분 벽화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으니 세계적으로 한국미술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김=북한과 중국 지역의 유적이 모두 등재되면서 남는 문제는, 북한과 중국이 각자 자기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결국 두 지역의 유적이 나뉘게 되는 비극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행히 이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달리 고분이라는 예술 또는 미술 분야에 한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충돌을 최소화하고 공동 토론의 장이 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문화사, 미술사적 관점에서 논한다면 북한, 중국과 함께 연구할 수 있다. 북한 학자들을 지원하고 그 연구 성과를 우리와 공유하도록 하면서 남한과 북한, 중국에서 돌아가면서 공동학술회의를 개최한다면 상당히 중요한 성과를 얻을 것이다.

▽박=그런데 지금 고구려 유적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소재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고구려사를 중국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고구려를 세계에 제대로 소개하는 영어책은 거의 없다. 서구에는 일본학이나 중국학을 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은 대개 일본이나 중국의 책을 통해 고구려를 이해하고 있다. 고구려에 대한 연구성과를 보면 남한의 수준이 가장 높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서구학자들은 별로 없다. 그런 연구 성과들을 영문으로 소개하는 일이 우선 진행돼야 할 것이다.

▽김=그렇지 않아도 금년에 ‘고구려연구재단’에서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 북한 학자들과 학술회의를 하기로 예산을 잡아놨고 현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측과도 사회과학원과 학술회의를 갖기로 논의 중에 있다. 또한 고구려뿐 아니라 한국고대사 일반이나 문화사에 대한 성과도 영어로 소개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해서 번역, 저술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 김정배 고려대 교수

(64·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한국고대사)

● 문명대 동국대 교수(63·불교미술사)

● 박아림 숙명여대 강사

(34·고구려연구재단 부연구위원·동아시아 고분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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