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서울은 지금 선물배달 전쟁중

  • 입력 2000년 9월 7일 18시 50분


요즘 매일 오전8시면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는 이색적인 택시 행렬이 이어진다. 손님 대신 선물보따리를 가득 실은 택시들이 줄줄이 주차장을 나서는 것이다. 추석선물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150% 이상 늘어나 자체 배송차량과 인력으로는 배달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백화점측이 100여대의 개인택시를 투입한 까닭이다.

“배달일자가 촉박해 서울의 지리를 잘 아는 택시운전사들을 동원했습니다. 점포별로 100여대씩이니까 지난해보다 3배 가량 동원대수가 늘어났어요.”(롯데백화점 신속배송팀 담당자)

▽치열한 배달 전쟁〓추석을 앞두고 서울 거리에서 ‘배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백화점과 인터넷쇼핑몰의 올 추석매출이 사상 최대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각 유통업체의 배달경쟁이 판매경쟁 못지 않게 뜨겁다. 신속 정확한 배달을 위해 자체 인력과 차량뿐만 아니라 택시 오토바이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치열한 ‘속도전’을 펼치는 것이다.

인터넷쇼핑몰인 한솔CSN 기획팀 임병호(林炳浩)대리는 “지난해보다 배달물량이 2배가까이 늘어났다”며 “협력업체의 차량 50대를 투입하고도 부족해 150대의 오토바이 퀵서비스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선 300여명의 직원 중 필수 사무직원을 제외한 250명이 순번제로 배달에 나설 정도다.

퀵서비스업체인 B사도 “하루 60여건이던 배달건수가 요즘 150건 이상으로 늘어나 20명의 배달원들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뛴다”고 전한다. 12만원의 일당을 받고 하루 7,8시간 동안 30여건의 선물을 배달하는 택시운전사들도 ‘추석특수(特需)’에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전문택배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한통운측은 “기존 1500여대의 택배차량에다 협력업체의 지원을 받아 500대 가량 늘렸는데 이것도 모자라 관리직 사원들의 승용차까지 끌어모았다”고 말했다.

▽교통체증 부채질〓이같이 배달물량과 이를 실어 나르는 차량이 폭증하다 보니 교통체증이 도심 백화점을 중심으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추세다.

서울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대형시장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도심교통정체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올해는 특히 택배차량이 두배 이상 늘면서 교통난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점심 약속이 있어 마포의 직장에서 세종로까지 나왔다는 직장인 정모씨(45)는 “평소에는 택시비가 2200원이면 충분했는데 이날은 5000원이 나왔다”며 시간도 평소의 2배나 걸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승용차나 배달차량이 하루종일 거리를 꽉 메우고 있어요. 여기서 남대문까지 갈 때도도심을 지나지 못하고 외곽으로 한참 돌아가야 해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한약중개상을 하는 윤성주(尹成柱·36)씨는 “약재배달에 걸리는 시간이 평소의2배 이상이나 돼 생업에 지장이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통체증을 우려해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인공위성을 통해 어느 지역이 막히는지, 어느 쪽으로 돌아가야 빠른지를 배달차량에 알려주는 첨단 배달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선물 과소비 우려〓일부에서는 정성보다는 물량위주의 ‘선물 과소비’에 대한 우려와 함께 배달물량의 폭증으로 갖가지 배달사고가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 박인용(朴寅龍)생활문화팀장은 “최근 사이버쇼핑몰이 늘고 택배업체가 난립하면서 추석이 지난 뒤에는 택배피해 사례가 집중적으로 접수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물량이 늘어나면 자연히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주문할 때 계약서에 주문내용과 요구사항을 상세히 써놓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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