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명광고]'사랑받는 괴물'…사회적 냉대에 통렬한 풍자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56분


지금 미국의 담배산업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소비자 단체와 클린턴 정부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1913년 탄생한 미국 애연가의 영원한 친구 ‘캐멀 담배’도 그 대열에 서있다. 캐멀은 말버러에 한참 밀리던 1986년 낙타얼굴을 한 ‘조캐멀’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 광고를 통해 비로소 하향곡선을 긋던 판매고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조캐멀은 청소년들의 흡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용불가 판결을 받고 96년 자취를 감춘다.

이후 캐멀광고의 행보는 암호풀기 시리즈로 재개된다. 98년부터 집행된 일련의 이 광고들은 정부에서 내린 철퇴를 우회적으로 비꼬는 고단수의 수법을 동원하는데 그 표현의 중심엔 엽기의 코드가 자리한다. 이 때의 엽기는 주로 키치와 개그에 크게 의존하는데 그 두가지 도구가 비꼬기의 기능을 적확하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를 보자. 그림엔 바다괴수가 등장하여 여자를 납치해 가고 있다. 미녀와 야수의 패러디. 50년대 미국의 고전적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수를 등장시킨 이 광고는 경찰 복장, 사진기자의 의상과 구식 카메라, 사람들의 수영복 디자인에서 풍기는 당시의 분위기를 살린 복고를 시도하면서 한편의 엽기를 형성한다.

괴수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된 해수욕장, 뒤집혀진 경찰차, 소리만 지르는 경찰관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괴수의 모습이 캐멀의 의연함을 대변한다. 미국 정부에선 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루트를 통해 담배회사를 이처럼 해괴망측한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다. 눈여겨 볼 점은 괴수의 품에 안긴 여자가 경고문(임산부가 흡연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측상단의 내용)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음껏 담배를 즐기고 있으며 공포에 질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캐멀과 소비자의 사랑은 이렇게 계속될 것이라는 듯, 캐멀은 어떤 난관 속에서도 행복할 것이라는 의미.

캐멀의 심각한 장난이 어디까지 뻗칠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광고를 보는 사람은 즐겁다. 암호풀기의 교묘한 전략으로 시민단체와 정부를 비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청스러운 너스레가 밉지않다.

캐멀광고는 디젤 진 광고와 함께 엽기 광고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엽기는 대중문화의 뜨거운 화두다. 중요한 것은 엽기가 풍자의 기능을 발휘할 때 문화의 순기능으로 작용하며 하위 문화의 아방가르드(전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이상한 것만을 찾는, 엽기를 위한 엽기를 생산해내는 것은 끊임없는 소모전일뿐이다. 캐멀광고는 그런 점에서 재미와 통렬함을 전해주는 엽기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김 홍 탁(광고평론가·제일기획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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