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윌리엄/핵잠함 침몰 부른 러軍 예산경쟁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49분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은 단순히 승무원들의 인명손실이라는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군부지도자들의 통치스타일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 초기에 보여준 오만한 태도는 그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사고가 나자 러시아 군부지도자들은 침몰하고 있는 쿠르스크호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폈다. 푸틴 대통령은 며칠 동안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러시아 군부의 병리현상은 새삼스레 놀랄 일이 아니다. 신병들에게는 잔혹한 훈련, 학대가 가해지고 고참병들 사이에는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러시아 병사위원회’의 어머니들은 이 같은 사실들을 모아 출판하기도 했다. 반면 군장성들은 러시아 청년들의 애국심이 부족하고 국방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게다가 장교들이 각종 예산을 착복하며 훈련과 신규장비 구입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군은 무엇 때문에 이번처럼 대규모의 험난한 해상훈련을 바렌츠해에서 감행했단 말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러시아 해군과 지상 핵전략군이 부족한 재원을 놓고 과도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보리스 옐친 정권 하에서 전략핵군과 재래식 지상군은 그 관할권 및 예산배정의 우선권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었다. 이고리 세르게예프 당시 국방장관은 지상핵 로켓부대에 대한 독립적 지휘체제를 확립한 후 새로운 장거리 탄도미사일체제를 갖추는 한편 재래식 전투군을 축소했다.

그러나 초기 체첸 침공을 지휘했던 아나톨리 크바시닌 합참의장은 재래식군의 보강을 위해 노력해왔다. 푸틴 대통령 정권 하에서 이 같은 군부의 권력투쟁은 3각 갈등으로 변했다. ‘세계적 해군’이 돼야 한다는 푸틴의 선언에 고무된 해군제독들은 지상로켓군이 아닌 미사일이 장착된 잠수함이 핵저지를 위한 러시아 주력군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렌츠해에서의 대규모 훈련은 이 같은 내부 갈등과 관련이 있다. 해군 잠수정의 지휘관들은 능력 이상으로 자신들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물론 푸틴 대통령이 있다. 그는 체첸 침공으로 인기를 얻은 후 지상군에도 대규모 지원을 약속해 양측 모두에 지나친 기대를 갖도록 했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과연 양측의 기대에 걸맞게 지원을 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범죄를 소탕하고 부패를 뿌리뽑아주기를 원하지만 군부에 편향되고 비밀경찰을 강화시키는 데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고 있다.

이번 쿠르스크호 침몰은 국민으로 하여금 푸틴 대통령의 그런 성향에 더욱 반기를 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군부의 지도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는 데 도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윌리엄 오돔<예일대 교수 허드슨연구소 연구원>

(http:www.nytimes.com/yr/mo/day/oped/20odo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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