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사(1)]'진료현실'에 강한 위기감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28분


《30여년 동안 좌절을 거듭해온 의약분업문제는 이번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의사들은 왜 의약분업에 반대하며 폐업을 선택했는지, 정부와 의료계는 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를 짚어본다》

서울 인근에서 5년째 개원중인 이모씨. 최근 의사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그는 “의약분업으로 의사 역할이 크게 축소됐고 폐업과정에서 의사들에 대한 신뢰와 권위마저 무너졌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의약분업은 서양의학 도입 100여년만의 의료체계 대변혁. 정부는 약품오남용으로부터 벗어나고 의료비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의사가 느끼는 걱정과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분업실시를 앞두고 생긴 의사들의 위기감은 폐업투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 이들의 위기감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국민 환자들로부터의 지탄이다. 폐업투쟁중인 의사들에게는 지금 “진료권과 건강권을 주장하면서 환자를 외면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둘째는 공권력으로부터의 압박감. 정부는 의사들의 폐업행위를 집단이기주의로 규정하고 전공의 강제입영방침을 밝히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폐업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도 진행되고 있다.

셋째는 의약분업에 따른 수입감소와 미래에 대한 불안. 분업을 앞두고 정부가 약값마진을 없애는 대신 수가인상으로 전환했지만 실제 인상분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내과 소아과처럼 수입의 30∼50% 가량을 약값에 의존하던 의원은 말 그대로 생계를 걱정하는 수준이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의사들은 폐업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폐업에 임하는 의사들의 입장은 자신이 처한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은 하루빨리 이번 사태가 끝났으면 하는 입장. 반면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의약분업의 직격탄을 맞는 동네의원들은 경영 압박으로 할 수 없이 문을 열지만 전공의의 폐업이 무엇인가 결실을 맺기 전에 끝나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안과 성형외과 등 분업의 피해를 덜 보는 의사들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가장 강경한 것은 ‘미래의 개원의’들인 전공의들. 이들 대부분은 격앙돼 있으며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분위기는 의약분업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강경대책에 집단항거하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의사집회에 대한 강경조치와 폐업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가 오히려 사태를 꼬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구속자석방과 수배자해제 △정부의 사과 △의사에 대한 탄압과 협박중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 정부가 도대체 사태해결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한 참석자는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왜곡된 의료환경을 개선하려는 ‘순수한 요구’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의료계를 돈만 생각하는 ‘못된 집단’으로 호도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상당수 의사들은 특히 돈문제만으로 현 사태를 바라보는 데 거부감을 나타낸다. 연세대의대 교수평의회의장인 홍영재(洪永宰)교수는 “무엇보다 폐업과정에서 정부나 시민들로부터 받은 의사들에 대한 매도가 의사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진단했다.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의사들의 위기감이 바로 의료상황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전공의가 철수한 대부분의 대학병원 종합병원에서는 수술은커녕 치료도 못받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의료폐업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는가.

<송상근·이성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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