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자유의 다리

  • 입력 2000년 8월 21일 18시 48분


경의선 복원공사로 형체가 사라질 뻔했던 자유의 다리가 그대로 보존된다고 한다. 철도청은 당초 경의선 복원공사의 예산감축과 기간단축을 위해 기존의 다리를 증개축해서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사의 상징물인 이 다리를 뜯어내는 일이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자유의 다리가 경기도 지방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지만 전쟁의 상처와 자유의 가치를 함께 지닌 유적으로 남아 있게 됐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자유의 다리는 본래 경의선이 제 기능을 할 때 서울과 신의주를 오가는 상하행선 철로가 놓인 임진강 위의 철교였다. 경의선은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한반도를 거쳐 북방 대륙으로 가는 군용철도로 건설했다. 자유의 다리도 비록 일제가 만들었지만 분단 이전엔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향하던 북녘 시골소년들이 건너오는 통로였다. 한 시인은 그것을 이렇게 노래했다. ‘…한때는 시골소년의 꿈도 서울까지 태워다 주고/광야를 달리는 벅찬 울음으로 메마른 논밭을 흔들어 놓던 경의선/그 거대한 기관차를 잡초 위에 쓰러뜨린 자가 누구인가.’(강인섭, ‘녹슨 경의선’)

▷6·25전쟁은 그 임진강 철교를 비켜가지 않았다. 폭격을 맞은 다리는 그만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거의 교각만 남게 됐다. 그러나 휴전협정과 포로교환협정이 체결되자 남북의 포로를 교환하는 이송로로 그 교각 위에 목조다리가 급조된다. 1953년 늦가을 국군과 유엔군 포로 1만2773명이 자유세계를 선택해 이 다리를 건너 왔다. 이들은 다리를 건너면서 “자유 만세!”를 외쳤다. 그 만세 구호가 이 다리의 새 이름이 된 것이다.

▷포로교환에 이용된 후 남북간 통로로서의 자유의 다리는 다시 닫히고 만다. 그러다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 전 남한의 밀사들이, 그리고 그 후엔 간간이 남북회담대표단이 이 다리를 건너 다녔다. 그러나 새로이 건설될 임진강 철교와 경의선은 만저우(滿洲)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될 것이다. 자유의 다리는 이 ‘철의 실크로드’가 개통되는 것을 감격어린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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