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카덴자' 이미정, 고문받는 역할로 멍투성이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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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죄를 알겠소.”

객석에서 끌려나온 여성 관객이 온갖 고문을 당하다 결국 죄를 시인하면서 교수대에 오른다.

역사와 현실을 넘나들면서 부도덕한 권력을 비판하는 연극 ‘카덴자(Cadenza)’에서 주인공인 ‘여성 관객’으로 등장하는 이미정(28).

카덴자는 연주자나 독창자가 악장 마지막에서 즉흥적으로 테크닉을 펼친다는 의미. 어떤 면에서 이 작품의 카덴자는 보이지 않는 ‘지휘자’인 연출자 채윤일과 무대 위 이미정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미정의 카덴자’는 대사가 거의 없다. 막이 오르자마자 끌려나온 뒤 “뭣 하는 짓들이냐”는 황당함과 분노가 뒤섞인 초반부의 대사들이 전부다. 마지막 엔딩까지 그는 지문에 따라 몸의 전율로, 때로는 눈빛으로 고문과 부조리한 역사가 주는 고통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차라리 대사가 있다면 연기하기가 편할 것”이라며 “팔이 묶이고 테이프로 입이 봉해지는 육체적 고통보다 말을 못한다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밥솥을 이용한 전기고문, 물세례와 시각고문, 귀청을 찢어놓을듯한 청각고문…. 물론 무대의 고문 장면들이 실제상황이 아닌 데도 그의 팔과 목에는 시커먼 멍과 긁힌 상처가 여러 군데 남아 있다.

“보기 흉하지만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습니다. 극장을 찾은 관객이 내게 남은 상처보다는, 시대에 관계없이 오만하고 무자비한 권력이 개인들에게 주는 상처를 잘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미정은 딸 수담을 출산한 지 9개월만에 무대에 올랐다. 매일 2회씩 ‘고문’이 불가피한 이 작품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98년 ‘산씻김’에서도 고문받는 여자역이었는 데 육체적으로 훨씬 힘들었다”면서 “아마도 고문에는 내성(耐性)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93년 ‘불의 가면’을 시작으로 ‘산씻김’ ‘카덴자’까지 채윤일과 극작가 이현화의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관객의 성향에 따라 이 작품을 페미니즘이나 새디즘으로 해석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의 객석에서 타의에 의해 갑자기 역사로 끌려들어간 여성의 심리 표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10월8일까지 서울 서교동 소극장 산울림. 평일 4시반 7시반 주말 3시 6시 02―334―5915.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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