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자금 돈세탁은 괜찮나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37분


재정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할 돈세탁방지법안의 대상에서 불법 정치자금은 제외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제기구의 압력에 못 이겨 법은 만들되 그저 허울이나 갖추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반사회적 범죄 자금의 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대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회원국에 돈세탁 방지 제도의 강화를 독려하고 있다. 국제적 압력 외에 국내적으로도 내년 1월 제2차 외환 자유화를 앞두고 돈세탁 방지 체계의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미리 돈세탁 방지 체계를 갖추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외환 및 자본거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한국이 국제 범죄조직의 자금세탁 중개지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

결국 시한에 쫓기는 재정경제부는 국회의원들이 싫어하는 정치자금 부분을 제외하고 국회를 통과시키려는 잔꾀를 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전략의 배후에는 아직도 검은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97년 부패한 정치인 관료 금융인들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 사건이 터지자 들끓는 여론에 따라 돈세탁방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이 법안은 국회의원들의 기피로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재정경제부는 정치권 비자금 등 부패 방지 관련 제도는 별도 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세우고 있지만 한국의 범죄 현실에서 정치자금은 돈세탁의 핵심이다. 마약범죄 조직이 돈세탁의 주요 고객인 외국과 달리 한국은 뇌물 수수 등 화이트칼라 범죄가 돈세탁의 주류를 이룬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9년 동안 검찰에 적발된 돈세탁 사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돈세탁을 이용하는 직업별 분류에서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조세 관세공무원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국제사회가 눈 가리고 아옹 식의 돈세탁방지법을 수용해 줄지도 의문이다. 정치인이나 관료의 뇌물 수수는 더 이상 한 나라만의 부패 문제가 아니다. 모든 선진 문명국가들이 국제거래에서 부패를 추방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을 진행중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은 국제투명성기구(TI)가 작년 말 작성한 국가부패지수에서 조사 대상 99개 국가 중 50위를 차지했다. 뇌물지수는 조사 대상 19개 국가 가운데 중국에 이어 두 번째이다.

국회의원이 무서워 불법 정치자금을 대상에서 제외시킨 돈세탁방지법을 만들면 또 다시 국제적인 창피를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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