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血 肉(혈육)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血 肉(혈육)

濃―진할 농 指―가리킬 지 呼―부를 호

浮―뜰 부 粉―가루 분 腹―배 복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血肉간의 끈끈한 정을 이처럼 잘 표현한 말도 드물 것이다. 이 말은 중국 사람들도 즐겨 입에 올리곤 하는데 ‘血濃於水(혈농어수)’라고 한다. 그뿐인가. 서양 사람들도 즐겨 인용하는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血肉간에 느끼는 정은 같은 모양이다.

血肉에 대해 느끼는 정은 동물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으며, 쇠심줄 같아 끊으려야 끊을 수도 없고, 시간이 흐른다고 잊혀지기는커녕 더 깊이 저며오는 감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위적인 分斷狀況(분단상황)으로 인해 생이별을 해야 했던 처지라면, 엎어지면 코 닿을 듯 指呼之間(지호지간)에 있으면서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애절함은 筆舌(필설)로도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血肉의 情을 끔찍이 여겼던 우리 민족에 있어서랴.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이었던 탓에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는 이를 浮浪者(부랑자)라 하여 좋게 여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땅을 중심으로 둥지를 틀고 평생도 부족해 수대, 수십대를 붙박이로 살아왔다. 자연히 家庭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으며 그 속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천리타향에서 高官을 지내다가도 자리에서 물러나면 어김없이 落鄕(낙향)해 둥지로 돌아오곤 했다. 이래저래 가족, 血肉간의 정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귀성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체화의 경향이 강해 각종 표현을 살펴보면 몸뚱이에 비유한 것이 적지 않다. 나를 가리키는 말은 自身,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立身이다. 終身(종신) 獻身(헌신) 殺身(살신) 出身(출신)이라는 말도 있다. 보답하기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을 粉骨碎身(분골쇄신),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는 것을 ‘肝이 크다’고 한다. 속마음까지 털어놓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心腹(심복)이라고 하며 그런 사람을 手足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血肉도 같은 예라 할 수 있다. ‘피붙이’란 말처럼 그야말로 내 몸의 ‘피와 살’이니 어찌 애틋하지 않겠는가.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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