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감춘 비밀]셰익스피어는 진짜 누구인가?

  • 입력 2000년 8월 9일 14시 44분


셰익스피어의 얼굴. 얼굴을 따라 그려진 선은 가면자국이라는 주장이다.
셰익스피어의 얼굴. 얼굴을 따라 그려진 선은 가면자국이라는 주장이다.
셰익스피어를 아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십중팔구 대답 대신 묻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볼 것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이제 탐구의 대상 이전에 경배를 바쳐야 할 '신전'이다. 그런데, 그 신전의 실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가공인물일 뿐이고, 그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한 사람은 누군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다.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은 그 실존 여부에 대한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때는 공식적으로 1564년인데, 4월 26일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만으로 관례에 좇아 4월 23일로 추정한 것이다. 타계한 해 역시 1616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날짜가 묘하게도 생일과 같다. 고향인 스트랫포드-어폰-에이본 교회의 초라한 묘석에는 "친구여, 제발 여기에 묻힌 흙을/파내지 말아주오./이 묘석을 아껴주는 이에게는 축복이/나의 유골을 건드리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니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어 빈 묘라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하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의 책 타이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더블 A'. AthenA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실제 인물로 유력한 사람은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베이컨을 셰익스피어로 보는 이들은 여러 가지 증거를 든다. 명백한 증거가 바로 베이컨이 남긴 《프로무스(Promus)》다. 베이컨의 사적인 기록과 편지를 모은 이 책에는 203개의 영국 속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52개가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온다는 것이다. 영국박물관(Harleian 수집품목 No. 7017)에 소장된 《프로무스》는 베이컨이 1594년에서 1596년 사이에 쓴 개인 기록과 편지라서 셰익스피어가 이 노트를 보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베이컨이 베껴왔을 가능성도 없는데,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베이컨의 사인. 이름 옆에 아테나가 메두사를 죽일 때 사용했던 거울의 상징인 숫자 6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벤 존슨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베이컨이 1619년 제임스왕에게 쓴 편지의 "Love must creep in service where it cannot go."라는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1623년 작품집' 《베로나의 두 신사》의 4막 2장의 한 문장과 똑같다. 또 1622년부터 23년까지 베이컨이 헨리 8세의 기록을 찾은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인 《헨리 8세의 역사》는 죽은 지 7년만인 1623년 12월에 초판을 발행했는데, 1623년 2월과 6월에 베이컨이 버킹엄공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헨리 8세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문서보관소에도 1623년 1월에 베이컨이 헨리 8세의 통치기록을 빌렸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셰익스피어의 사인. 2만자가 넘는 희곡을 쓰는 사람의 필적이 이렇게 엉망일까.

출판기간 역시 의심스럽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활발하게 발표된 1589년과 1607년 사이에는 베이컨이 백수였고, 법무국장으로 지명돼 바쁘게 지냈던 1607년에서 1621년 사이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거의 없었다. 1618년 뇌물수수혐의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대법관의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한 이후 셰익스피어는 다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베이컨의 뛰어난 저작인 《신논리학》이나 《학문의 진보》는 각각 1620년 말과 1623년에 발표됐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베이컨이 집필활동에 힘을 쏟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이 바로 1623년, 베이컨이 한창 집필활동을 하던 이때 개정·보완되어 묶여나온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유력한 후보 프랜시스 베이컨

그렇다면 굳이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임을 숨길 필요가 있었을까. 거기에는 출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베이컨 연구자들은 여러 자료를 통해 베이컨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엘리자베스 1세였다고 주장한다. 임신 중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두 아이를 그린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그 증거로 든다. 엘리자베스와 함께 그려진 두 아이 가운데 하나는 창을 들고 있는데, 창은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상징이자 베이컨의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shakespear'라는 이름 역시 '창(spear)을 흔드는 사람(shaker)'으로 아테나의 상징으로 풀이한다. 윌리엄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투구를 상징하는데, 이것 또한 아테나의 투구다.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저작의 타이틀에 나타나는 '더블 A'는 "AthenA"에서 따온 것이며, 베이컨이 자신의 사인 옆에 쓴 아리비아 숫자 '6'은 메두사를 잡은 아테나의 거울을 상징하는 숫자다. 또, 암호풀이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베이컨의 이름을 찾아내기도 하는데, '템페스트'에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름은 아테나의 상징인 아치형으로 나타난다.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의심했던 찰스 디킨스 이후 이 천재적인 작가의 정체에 대한 의심은 아직도 남아 있다. 얼마전 출간된 존 미셸의 《Who Wrote Shakespear》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자가 누군가에 대한 10가지 설을 종합해 놓은 책이다. 그는 베이컨보다 크리스토퍼 말로위가 더 셰익스피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정말 셰익스피어는 없는가, 그는 누구일까.

이현주(북코스모스 http://www.bookcosmos.com) hyunjoo70@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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