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영상 문화와 기호학'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44분


디지털 문화의 확산은 이미지의 홍수를 불러왔다. 지난해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상의 올려진 이미지는 2억개(3조 바이트)를 육박한다. 하루 평균 1백만개의 이미지가 태어나고 1천만개의 이미지가 갱신되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의 과잉은 모든 기호를 영상화시키는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라깡 같은 탁월한 선지자의 혜안이 없지 않았지만 이에대한 학문적 성찰은 아직 초보 단계다. 과연 영상문화는 비지성적인가, 언어는 영상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언어와 영상은 양립 혹은 융합 가능한가. 7주년을 맞은 한국기호학회가 내놓은 10편의 논문 모음집은 바로 이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머리글인 ‘넓은 기호의 영상’에서 정대현 교수(이대 철학과)는 김우창 조송배 교수 같은 인문학자의 반(反)영상론을 비판한다. “감성과 이성의 데카르트식 이분법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영상론자의 ‘영상’은 언어가 아니면서 합리적 이성적 사유에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기호 영상’일 뿐이란 것.

정교수는 대안으로 영상을 넓은 기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몇 가지 가설을 든다. 감성과 이성은 맞물려 있다(“감정은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일 수 있지만 무이성적일 수는 없다”), 영상은 회화적이라기 보다 언어적이다(“인간의 시선은 주관이 개입한 결과의 구성적 확인이다”) 등.

‘말·글·그림’에서 김성도 교수(고려대 언어학과)는 한발 더 나가 ‘융합 기호학’의 단초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텍스트와 이미지와의 대립적 편견을 일으키는 언어중심적 기호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레프 마노비치 교수(캘리포니아대 영상예술학과)가 제출한 ‘상징 형태로서의 데이터베이스’ 논문은 최근 보기드문 흥미로운 사례 분석이다. 게임 같은 뉴미디어에 본질적 속성인 데이터 베이스가 갖는 기호학적 의미, 인간 문화를 지배했던 다른 전통서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테트리스’ 같은 고전부터 ‘퀘이크’ 같은 최근작까지 다양한 실례를 거론하고 있는 점은 돋보이는 미덕이다.

▼'영상 문화와 기호학'/ 한국기호학회 엮음 / 문학과지성사/ 333쪽 1만1000원▼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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