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of the week]한충완, 피아노 선율로 행복을 전하다

  • 입력 2000년 7월 26일 16시 46분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몸집은 작고 말썽이라고는 하나도 안 피웠을 것 같은 얌전한 얼굴을 가진 한 피아니스트가 그랜드 피아노의 건반 앞에 앉는다. 수선스러운 소리없이 사뿐히 앉으면 그 작은 몸집은 피아노에 모두 가려진다. 드디어 어디선가 명쾌하고 서정적이며, 한없이 푸근하고 정으로 가득찬 멜로디가 흘러 나온다. 순간순간 커다란 피아노 위로 잠깐씩 그의 눈이 보인다.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눈.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는 무더운 어느날 오후, 대중매체에서 또는 앨범으로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는 재즈피아니스트 한충완을 만나고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에겐 그의 3집 앨범 뿐만이 아니라 이미 희귀 앨범이 된 그의 1집 앨범도 들려져 있었기 때문에 마음 한켠으로 정말 든든한 출정. 미리 약속 장소를 지키고 있던 그는 새로나온 3집 앨범을 통해 미리 얼굴을 익혀놓지 않았더라면 그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질끈 동여 묶은 긴 머리, 간간히 보이는 희끗희끗한 새치, 그리고 입 주위에 덥수룩히 기른 수염, 그리고 노란 금테가 두껍게 둘려진 동그란 안경까지.

Q : 근황은…

글쎄요…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서류상의 일도 있고 그래서 일주일에 2,3일은 나가고, 3집 앨범 나와서 막 홍보를 시작했으니까 막 뛰어다니고 있죠…제가 네 아이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차분하고 안정된 그의 첫대답. 만남의 시간이 아주 편안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3집의 느낌은 앨범 자켓 색깔처럼 환하다. 아주 밝은 연두빛 배경에 흰 글씨로 ‘한충완’이라는 이름 석자와 고개숙인 그의 모습이 보일 뿐. 앨범을 뒤집어 수록된 9곡의 제목을 보고 있자니 한 개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Q : 3집 곡들의 분위기…

굳이 분류를 하자면 (3집은)퓨전재즈 쪽에 가깝지 않을까…1집은 뉴에이지적 냄새가 나는데…

1,2집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대중적으로 하려고 노력을 했고, 그래도 대중적이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번에 컨셉은 일렉트릭 악기를 많이 사용하자는 것이었는데, 일렉 베이스나 키보드 소리가 많이 들어갔죠.

Q : 음악인들이 음반을 하나 만들면 수록곡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곡이 있을 것 같은데…

제 기억에는 다 남죠.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그런 것 없어요. 그런데 기획사 측에서는 6번, 7번 곡을 민다고 하더라구요. 6번 ‘종이비행기’, 7번 ‘Memories Of You’(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만한 곡으로 한상원씨가 기타를 연주해 주신 곡).

2집의 ‘학교종’에 이어서 3집의 ‘종이비행기’도 동요를 편곡한 곡인데, 그에게는 앨범마다 동요를 한곡씩 넣는 철학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렸을 적으로 다시 돌아간다.

서울대 농화학과 졸업 후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그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학을 결심할 때 부모님 반대가 심하셨지만 그래도 철없는 아들을 잘 보조해 주셨다고 말하는 그, 용감한 결정을 내린 그가 순간 위대해 보였다. 그리고 한곳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도전정신을 가진 그가 왜 그리도 부럽던지. 자신이 진로를 바꾸는 것에 관해서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부모님의 반대까지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8년의 유학시절 동안) 학교 다닌 기간은 4년 반정도 되고, 학교 다니면서 일했던 기간이 6년 정도 되고…일은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하거나 파티 같은 곳에서 연주하고…경험으로 시작해서 했는데 나중에는 돈도 벌고 학비와 생활비에도 보태쓰고…그시절 기억에 남는 건 Gig(음악연주) 중에서 펑션Gig(결혼식장 등의 기능성있는 장소에서의 연주)할때, 관객중 한명이 저한테 오시더니 저한테 웃으라고 그러시는 거에요. 그때는 그게 기분이 안좋더라구요. 그런데 나중에 다른 사람의 공연들 보니까 그러면 안되겠구나 싶더라구요…

Q : 왜 재즈를 선택했을까? 그것도 15년 전쯤에, 재즈음악이 우리나라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더군다나 정통 재즈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들으면 알 수 있어요. 일단 들으면 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음악하시는 분들이나 대중들이 ‘재즈가 좋다’ 그러면 사실 이해가 잘 안가요. 제가 공부를 시작한 것도 재즈가 좋아서가 아니라 궁금했기 때문이거든요. 도대체 뭘까,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재즈를 하는 입장에서 재즈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종의 기술을 연마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과 자기만족 때문이에요…그러면서 점점 그 수준이 높아지고…

실제로 재즈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는 기타를 잘치고 싶어서 6년 동안 방에 틀여박혀서 기타만 쳤고,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하루에 16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곧 훌륭한 연주인이 되는 길일 것이리라. 무협지를 봐도 도인은 산속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음악인으로서의 그도 이런 연마의 과정을 철저하게 즐기며 그것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불로 만들었다. 뼈를 깎는 노력과 자기와의 싸움.

이렇게 고립되어 연주에만 몰두하다보면 대중과 멀어지는 경향이 생길 수 있고 혹은 그 반대로 돈에 급급하여 너무 대중적으로 치우치는 연주인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유명해지길 원하니까.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왠지 대중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느쪽을 원할까? 대중일까 예술을 위한 고립일까?

Q : 대중과 멀어지는 것이 안타깝거나 그렇진 않은지…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도 자기가 택하는 건데요. 대중적인 것과 멀어지더라도 꾸준히 나가면 늙어서라도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혹은 자기 후손대에 가서라도 알려질 수 있겠죠. 알려지는 것이 목적인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안타깝게 생각하진 않아요.

Q : 6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오고 있는 교수로서의 한충완은…

학교생활도 재밌어요. 학교에서 접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10대 말, 20대 초의 젊은이들이라서 제가 가르치면서 나름대로 많이 배워요. 싹터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에너지들이 넘쳐서 기도 많이 받고…

Q : 현재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있는 음악과 경향은…

대중음악이죠. 대중음악은 상업적인 음악이고, 극히 일부의 예술지향적인, 실험적인 학생들 빼고는 대부분이 자신이 알려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할 수 있는 그런걸 원해요. 대중음악을 해야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심사가 그쪽에 있는 것 같아요.

Q :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

강조하는건, 음악 내부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얘기해줘요. 그게 제일 기본이고, 음악 자체가 소리잖아요. 음악으로 접하는 감성 혹은 지적인 정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이론적인 체계라던가 역사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까워지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Q :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루에도 수십 곡씩 접할 수 있는 우리들. 음악에 관심을 갖지 않은 젊은이가 없을 정도이고 음악인이 되고자하는 이들은 폭증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요즘.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지는지…실지로 많아지면 걱정스럽기도 해요. 그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서 어떻게 다 밥먹고 살까…한편으로는 음악의 전체적인 질이 향상되겠죠…음악의 실질적인 수준과 듣는 사람의 귀가 모두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에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어요.

Q : 앞으로의 계획…

3집과 연관되어서는 8월 24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이 있고, 그 외에도 틈틈히 해야겠죠. 다음 앨범은 내년 8월 전쯤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4집 준비는 많이 끝났다는 그의 말. 이번에 내놓은 3집이 일렉 분위기라면 4집은 어쿠스틱 분위기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Q : 마지막으로,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비트도 있고 리듬도 있고 그런 음악이 좋겠죠. 예를 들어 미국음악에서 보자면 딱딱한 동부음악 보다는 서부음악 같은거…추천하고 싶은 앨범은 조 샘플(Joe Sample)의 [Spellbound]와 겟츠 & 질베르토(Getz & Gilberto)의 [Getz / Gilberto] 등…

음악의 흑백을 구분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음악들. 모든 음악이 크로스 오버되고 다양한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각자 생각하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음악을 하는 재즈피아니스트 한충완. 편안한 음악으로 팬들의 마음 한곳을 포근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 재즈음악에서의 "메인스트림(Mainstream)" : [동영상] 30년대 스위, 4,50년대 비밥,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하드밥이나 프리재즈 아방가르드 같은 쪽으로 옮겨갔는데, 그 맥락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메인스트림(주류)이다. 백인들에 의해 희석된 것이 아닌 정통 흑인들이 했던 재즈음악들이며 남미에서 영향을 받은 라틴재즈 같은 것이 아니고 다른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정통 스윙이다.

* 한충완과 재즈친구들 공연 *

일시 : 2000년 8월 24일 (목) 오후 7시30분

장소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가격 : R-50,000원/S-40,000원/A-30,000원/B-20,000원

김효정 coolyang@tubemusic.com

기사제공 : 튜브뮤직 www.tube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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