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날치기'라니

  • 입력 2000년 7월 24일 19시 24분


국회 운영위가 끝내 국회법개정안을 ‘날치기’처리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의원 20명에서 10명으로 완화해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는 내용의 국회법개정안을 어제 민주당과 자민련이 한나라당과의 몸싸움 끝에 강행통과시킨 것이다.

국회 운영규칙마저 구태(舊態)를 동원해 처리하는 이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정말 새천년에 걸맞은 새정치를 약속했던 바로 그들인지 암울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낀다.

16대 의원들은 국회를 정치중심에 세워 토론을 활성화하며 1인 보스의 전횡적 정당운영도 거부키로 다짐한 이들이다. 내부개혁으로 국민에게 지탄받은 구시대의 못된 정치행태를 하나하나 고쳐 국회를 진정한 민의의 전당으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수없이 했다.

그런 그들이 총선민의를 멋대로 해석해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안을 내놓은 것부터 한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도 모자라 의안을 보란 듯이 ‘날치기 처리’하니 국민에게 새정치는커녕 거꾸로 가는 정치의 시범을 보이기로 작심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제 운영위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욕설을 퍼부으며 멱살잡이를 해댔고 탁자와 화분이 쓰러지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특히 여당은 국회의장까지 나서 “법 의안의 변칙처리는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그 말은 ‘거짓말’임이 입증됐다. 야당의 강경 저지를 뻔히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은 ‘보스’를 위한 충성심 보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이회창(李會昌)총재와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의 느닷없는 ‘골프장회동’으로 한나라당이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양해’한 것 아니냐는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 결코 사실이 아닐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오해를 자초한 것은 바로 한나라당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는 것을 이총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이 무엇이든 여당이 수적 우위만 믿고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큰 잘못이며 앞으로 국회는 물론 정국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을 경우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국민이 4·13총선에서 자민련에 17석밖에 주지 않은 것은 교섭단체를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의사표시였다. 그것을 왜곡시키려고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정도(正道)와 순리를 어기는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자민련부터 정국을 볼모삼아 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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