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렇군]유머의 생리학

  • 입력 2000년 7월 5일 19시 24분


한국 TV 방송을 비디오로 빌려보는 시간. 한국을 그리워하는 소중한 일과다. 그중에서도 ‘개그 콘서트’는 나의 단골 메뉴다. 한국 코미디는 저질이며 유해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나는 아직 한국 코미디만큼 수준 높은 개그를 본 적이 없다. 섹스에 관한 농담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풍자를 거세당하고도 한국 코미디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는 개그가 쏟아내는지. 뒤통수를 치는 재치와 반전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찌든 머리가 맑아진다.

인간은 언제부터 ‘유머’를 주고받게 되었을까?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기 좋아하는 생물학자들도 ‘유머’ 앞에서는 난감할 것이다. 잡아먹을 듯 덤비는 포식자를 웃겨 되돌려 보내지 않고서야, 유머가 생존 전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과학계는 요즘 사람이 유머를 즐길 때 뇌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반응에 관심이 높다. 전두엽(이마 바로 뒤쪽에 위치한 대뇌 영역)을 손상 당한 환자가 유머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보고 이후, 신경과학자들은 유머를 전담하는 영역이 뇌 앞쪽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영국의 심리학자 비노드 고울은 인간이 유머를 이해할 때 전두엽 뿐만 아니라 양쪽 측두엽을 포함해 대뇌 영역이 폭넓게 관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더크는 뇌파 검사를 통해 유머 속에 반전이 있을 때 대뇌의 전위도 큰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결말이 전체 이야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바로 이 짧은 반전의 순간에, 뇌에서는 복잡한 정보 처리 과정이 일어나며, 창의력처럼 고등한 사고 과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유머’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등한 ‘지적 활동’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그 절망을 헤쳐 나갈 지혜가 있다. 그런 면에서 ‘잘 생긴 남자보다 유머러스한 남자를 더 좋아하는’ 요즘 여성들은 정말 현명해 :-)

<정재승>sjeong@boreas.med.yale.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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