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日유권자 세습의원 '천국' 만들었다

  • 입력 2000년 7월 2일 19시 20분


지난달 25일 실시된 일본 총선에 아버지 장인 삼촌 형 등의 지역구를 이어 받은 ‘세습후보’ 152명이 출마했다. 이중 당선자는 총의석 480석 가운데 22.9%인 110명으로 당선율은 72.4%나 됐다. 일본에는 왜 정치를 ‘가업(家業)’으로 하는 세습의원이 많을까.

▽배경〓세습의원이 많은 것은 후보와 지역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세습후보는 지반(선거구) 간판(지명도) ‘가방’(자금)을 그대로 넘겨받는 만큼 당선이 보장되다시피해 출마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더 큰 이유는 지역구에서 세습후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원의 개인후원회는 필사적이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총리가 사망하자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들고일어난 것도 바로 후원회다.

후원회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현역의원의 후원회는 큰 이익단체다. 의원이 사라지면 후원회도 끝이다. 따라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세습후보를 원한다. 세습후보는 중앙정치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예산 배분에도 덕을 본다. 지역구에 나눠주는 선심성 예산을 따내는 데 특히 유리하다. 세습후보에 관대한 유권자 의식도 세습을 양산하는 배경이 된다. 전 의원의 피붙이가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으로 지지한다. 고향 출신을 거물로 키우자는 욕심도 작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저변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독특한 심리가 있다.

당도 세습후보를 좋아한다. ‘될 성 부른 떡잎’보다는 ‘당선의 보증 수표’를 택해 지역구를 맡기게 마련이다.

▽영향력〓일본에서는 당선 횟수 위주의 파벌정치가 뿌리깊다. 정무차관은 재선급, 각료는 5선급이 맡는다. 파벌 보스가 되려면 8선 이상은 돼야 한다. 총리는 10선급 이상이다. 그런 점에서 세습후보가 절대 유리하다. 다른 후보보다 정치생명이 길기 때문이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하타 쓰토무(羽田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 숨진 오부치 전총리는 모두 세습의원이다. 제1야당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는 4대 세습의원이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도 지역구 군수 출신 아버지 덕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비판〓세습후보는 후원회의 ‘민원해결사’밖에 안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구가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세습의원 연구’라는 저서를 낸 이치카와 다이치(市川太一) 히로시마 슈도(廣島修道)대학장은 “급변하고 있는 현시대에 세습의원이 늘면 정치와 일반국민의 괴리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3대 세습의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10선)자민당 모리파회장은 “야채가게나 라면집도 대대로 하면 더 신용이 있지 않느냐”며 세습풍토를 감쌌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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