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스타 포커스]안젤리나 졸리 "자유가 나를 키웠다"

  • 입력 2000년 6월 28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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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툼 레이더>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특수 효과보다 주연 배우에게 관심을 보였다. <툼 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게임 세계를 평정한 첫 여성이기 때문이다. 실리콘을 넣은 것 같은 가슴을 가지고도 혼자서 전세계를 누비며 보물을 찾는 라라 크로프트.

이 씩씩한 전사를 연기할 수 있는 여배우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해답은 금방 나타났다. 안젤리나 졸리(25).

여고생들을 이끌고 갱단에 맞서는 레즈비언이거나(<폭스파이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상대 해커를 죽여 버리는 사이버 세계의 난폭자였던(<해커스>) 졸리는 라라 그 자체였다. 라라 크로프트처럼 강인한 그녀는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 주인공이 필요없었다. 심지어 사랑해 줄 남자가 없어도 좋을 것이다. 졸리는 공공연한 양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졸리처럼 노골적인 여배우는 없었다.

그처럼 불온한 기운은 일찌감치 감지되는 법이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 놓은 TV 시리즈 <지아>의 연출자 마이클 크리스토퍼는 "졸리는 혼란스럽고 파괴적이다. 위험한 배우다"라고 말했다. 패션잡지 '엘르'도 "졸리는 점점 더 어두운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다"고 평한다.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졸리. 영화와 사생활이 섞이면서 그녀는 항상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 붙는 배우가 되었다.

스물 여섯에 에이즈로 사망한 모델 지아 카라니의 일대기 <지아>는 사람들이 졸리의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지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빠른 속도로 망가졌고 약물과 난잡한 성생활로 스스로를 망쳤다.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졸리도 비슷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녀는 열 네 살에 열 여섯 먹은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몸에는 여기저기 문신을 새기고 수집한 나이프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을 즐겼다.

<트레인스포팅>의 식보이 자니 리 밀러와 결혼할 때도 검은 가죽 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으므로" 흰 셔츠에 자신의 피로 밀러의 이름을 갈겨 썼다. 그녀에게는 마음 붙일 어린 시절의 기억도 없었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에 출연한 아버지 존 보이트는 졸리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가족을 떠났고 그녀는 오빠와 함께 어머니를 따라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에어 컨트롤>과 신작 <어둠 속의 춤 Dancing in the Dark>에서도 과거를 감추는 졸리는 "한 집에 정착해 다락방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과거를 추억할 만한 어떤 것도 갖지 못한" 채 파도같은 감정에 자신을 남김없이 싣던 어린 소녀. <처음 만나는 자유>를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가 "반항적이고 불안정하다"고 표현하는 이 거친 배우는 자신의 젊음을 남김없이 소진할 것 같았다.

졸리가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제임스 딘의 신화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까닭이다. "자유가 나를 키웠다"고 말하는 그녀는 제임스 딘처럼 젊은 기운으로 거짓을 조롱하고 질서를 거스른다.

그러나 졸리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짓눌린 지아와 다르고 충분히 자라기도 전에 죽어 버린 제임스 딘과도 다르다. <지아>를 마친 후 그 작품에 완전히 빠져 있던 졸리는 "삶과 영혼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달아났지만, 도피처로 찾은 곳은 무덤이 아니라 뉴욕대 영화과였다. 그리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그녀는 "연기란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얇은 자기보다도 깨지기 쉬운" 불안한 소녀가 아니다. <플레잉 갓>과 <에어 컨트롤>에서 두 남자를 동시에 혼란에 빠뜨리면서도, 졸리는 그 자신의 혼란은 이미 넘어섰다.

그러므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졸리에게 의미가 깊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여름 휴가처럼 즐겼던" 블록버스터 <식스티 세컨즈>와 달리, 정신병원에 갇힌 <처음 만나는 자유>의 리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졸리의 모습 그대로다.

거침없이 병원을 휘젓고 사람들을 공격하면서도 상처를 숨기지 못한다. 한동안 우울증을 잊었던 졸리는 "단지 중산층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병원에 갇힌 리사를 연기하면서 그녀와 꼭같이 상처입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성숙할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고 싶은" 졸리가 마지막으로 통과할 관문이었을지 모른다.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어른으로 도약할 수 있는 관문.

그녀의 미래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를 것이다. 헐리우드는 함정이 많은 곳이다. "자유가 나를 키웠다"지만, 졸리는 "너를 키운 것이 너를 파괴하리라"는 문신 역시 새기고 있다.

진지한 여배우를 받아 들일 생각이 없는 헐리우드에서, 그녀가 포기하지 않을 자유는 그처럼 그녀를 망칠 지도 모른다. 물망에 올랐던 시고니 위버와 데미 무어 대신 젊은 안젤리나 졸리를 택한 <툼 레이더>는 그녀의 육체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물 다섯에 세 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처음 만나는 자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탄 졸리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배우다.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것이다.

<김현정(parady@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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