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Politics]앨 고어 "멍청한면도 있어요"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미국인들은 너무 똘똘한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앨 고어의 대학시절 성적표가 최근 언론의 손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야릇한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에만 입학원서를 제출했던 사립고등학교 모범학생으로 학식 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던 바로 그 사람, 앨 고어가 하버드 시절에 한때 C 학점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온 세계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고어는 심지어 생물학에서 D 학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고어 진영의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성적표의 공개와 관련해서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런 속삭임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기 시작했다. “고어의 선거 캠프에서 일부러 성적표를 유출시킨 것이 아닐까”

고어의 진영에서는 사람들의 이런 의심을 부인했지만, 후보자가 학생시절의 일시적인 성적불량을 광고하는 것은 특이한 미국적 현상 중의 하나이다. 사실 조지 W 부시 주지사가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동안, 고어의 보좌관들은 자신들의 후보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표현처럼 너무 ‘똑똑한 놈’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미네소타의 제시 벤추라 주지사에서부터 로널드 레이건과 로스 페로에 이르기까지 최근 등장한 많은 정치가들은 지적인 호기심보다는 세상물정에 밝고 현실적인 성격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공화당 예비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자신이 해군사관학교를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졸업했음을 사람들에게 굳이 일깨워준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부 학자들 역시 똑똑한 사람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미국 역사상 최후의 지적인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그가 너무 사색적이어서 정부라는 수레바퀴를 돌리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지성인을 멀리하는 성향은 미국 유권자들의 존경할만한 특징 중 하나다. 유권자가 똑똑한 정치가를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똑똑한 척 행동하는 정치가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유권자는 오히려 자신과 더 비슷한 사람을 신뢰한다. 그 정치가가 보통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자신의 지성을 감추고 있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많은 유권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고전을 암송하는 실력이나 천재적인 수학실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도자가 올바른 결단을 내리고 국민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만큼 건전한 정신과 상식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어는 자신의 정치적 능력이 정치적 자산인 동시에 부담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시는 자신이 정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아니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이 멍청이가 아님을 유권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여전히 지고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들은 그가 지도력 부문에서 점점 더 높은 점수를 얻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고어는 자신이 일부러 겸손한 척하는 똑똑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어려운 짐을 지게 된 것이다.

고어는 이를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해 지난주에 벤추라 주지사를 방문했다. 벤추라 주지사는 전직 프로 레슬러로서 98년의 선거 때 자신의 TV 광고에서 팬티만 입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분장한 적이 있었다.

의회에 군림하고 있는 마지막 지성인 중의 하나인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상원의원은 “오래 전부터 정치가는 유권자에게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왔으며 그것은 적절한 민주주의적 전통”이라면서 “역대 상원의원의 이름을 훑어보면 원래 이름 대신 딕, 톰, 앨, 조 등의 애칭으로 자신의 이름을 등록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되려면 지성과 바보스러움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어야 하는 것일까. 모이니헌 상원의원은 “우리는 아직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DNA 서열규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review/062500political-minds-re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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