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워크아웃社 직원 '살아남은 者의 슬픔'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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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의 김모대리(31)는 며칠전 은행에 마이너스 통장 만기연장을 하러 갔다가 창구직원이 워크아웃 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보증인을 세우지 않으면 만기연장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크게 낙담했다.

김대리는 마땅한 보증인을 찾지못해 2년째 납입하던 정기적금을 해약, 대출금 1000만원을 갚아야만 했다. 금융기관에서 워크아웃 기업의 직원에게 신용대출을 줄이고 대출한도도 절반이하로 줄인 사실을 뒤늦게 안 것.

현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중인 60여개사에서 일하는 수만명의 직원들은 요즘 자신들의 처지가 새삼 서럽게 느껴진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경기호조로 다른 기업들이 정상을 찾아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직원들이 특히 견디기 어려운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회사가 정상을 찾을 것인지, 법정관리로 넘어갈 것인지 불안해 많은 직원들이 벤처붐을 타고 회사를 떠나고 있다.

대우그룹의 주계열사이던 ㈜대우는 한창 일할 과장과 대리급 직원의 절반이 회사를 떠나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피라미드 조직이 ‘모래시계형 조직’으로 되면서 일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숙녀복 의류업체로 98년부터 워크아웃중인 S사. 최근 영업부서의 환송회 회식자리가 화제가 됐다. 술이 몇순배 돈 뒤 떠나는 직원이 울먹이며 “혼자만 살겠다고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고 부서장이 “잡을 명분도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눈물바다가 된 것.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메우느라 업무부담도 몇배나 늘었다.

고합그룹은 4개 계열사가 한 개 회사로 통합되면서 총무 인사 등 관리부서가 하나로 합해지면서 인력이 절반 이하로 감축됐다. 또 신입사원을 3년 동안 뽑지 않고 고졸 여직원을 대거 줄이면서 과장 등 중간관리자들이 자질구레한 일까지 해야 하는 실정이다.

뒤바뀐 협력업체의 태도도 워크아웃 기업직원을 서럽게 한다.

㈜대우의 한 직원은 “회사초기 대우가 수출길을 열어줘 성장의 틀을 잡았던 한 협력업체가 수출선을 다른 종합상사로 바꿀 때는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섭섭했다”고 말했다. 일감을 달라고 애걸복걸하던 협력업체가 일감을 줘도 “현금결제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며 수주를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벽산 쌍용건설 등 워크아웃기업의 협력업체들이 한동안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을 구별하지 못하고 거래를 끊으려고 해 애를 먹기도 했다.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일부 채권단의 고압적인 태도에 직원들의 자존심을 한 없이 상한다.고합그룹의 한 직원은 “출장비나 회식비 같은 소소한 금액까지 채권단의 결제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늘 감시당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부 수출업체들은 무역업무의 특성상 자금 운용에 융통성이 중요한데 객관적인 수치 중심인 채권단의 자금감독으로 마케팅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한다.

워크아웃 기업의 경영진은 직원들의 이런 사정을 알고 직원들의 동아리활동이나 체육대회 등 각종 모임을 통해 사기를 올려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

최근 워크아웃을 졸업한 H사의 임원은 “워크아웃 과정을 통해 수익위주의 경영방침이 확고해지고 경영진과 직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는 등 얻은 점도 많다”며 “경영진과 직원의 단결이 성공적 워크아웃의 1차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병기·이명재·박정훈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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