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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13일 20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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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구성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보인 그의 전작들에 비해 ‘섬’의 짜임새는 일단 안정적이다. 이는 게릴라처럼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정규군이라 할 제작사 명필름과 손잡은 결과일 것이다. 명필름과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를 4억3000만원에 맞추는 등 김감독의 ‘저예산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김감독의 특징인 탁월한 색채감과 영상미도 돋보인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떠있는 파스텔 톤의 집, 물안개 피어오르는 고즈넉한 호수 등의 묘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반면 일그러진 밑바닥 인생,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에 대한 김감독의 관심은 ‘섬’에서 거의 엽기적인 수준으로까지 치닫는다.
낮에는 낚시터를 돌보고 밤에는 몸을 파는 여자(서정 분)와 살인을 저지른 뒤 낚시터로 찾아든 남자(김유석)는 서로의 미끼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얽히기 시작한다. 이들의 관계를 잇는 감정은 광기어린 집착. 도망치던 남자는 낚시바늘에 걸려 돌아오고, 여자는 남자를 소유하기 위해 낚시바늘로 자해한다. 낚시바늘을 몸의 이곳저곳에 꿰고, 회를 뜨다 만 물고기가 헤엄치는 등 몸서리쳐질 만큼 잔혹한 묘사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김감독의 전작들처럼 ‘섬’에서도 여자들은 전부 창녀이고, 모든 성행위는 공격적이다. 도중에 낚시바늘로 하트 모양을 만드는 남자처럼, 감독은 들끓는 증오와 폭력적인 집착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여자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는 상징을 통해 감독은 화해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 ‘화해’를 수용하기엔 앞부분의 거친 공격성, 착란에 가까운 집착, 인간관계에 대한 비뚤어진 묘사가 너무 강렬해 보인다. 18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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