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自社株 소각' 생색만 내고 흐지부지

  • 입력 2000년 4월 6일 19시 38분


주주총회를 앞두고 일부 상장사들이 주가를 부추기기 위해 내놓은 ‘자사주 소각’ 약속이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다.

기업이 자사주식을 소각하려면 원시정관(회사 설립당시 만들어진 정관)에 규정돼 있어야 하며 나중에 ‘자사주 소각’ 조항을 정관에 넣으려면 모든 주주에게 동의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 다수설이기 때문.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상장사들은 나중에 법률적인 문제로 주주들과 분쟁이 생길 것을 우려해 정부가 관련법령을 명확히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하겠다는 회사는 많지만…〓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현대전자 새한정기 한섬 쌍용정유 하나은행 등은 지난달부터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 투자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주총을 앞두고 ‘추락하는 주가에 날개를 달기 위해’ 잇따라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 증권사에서는 LG투자증권이 총대를 메고 나섰고 삼성증권도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대형블루칩인 포철도 자사주 소각에 동참했고 미래와사람 한섬 세원중공업 문배철강 쌍용중공업 등도 주총에서 ‘주식의 이익소각’ 항을 삽입해 자사주 소각 근거를 마련했다.<표 참조>

▽상법상 문제가 걸림돌〓그러나 실제 자사주를 소각한 곳은 아직 한 군데도 없다. 일부 투자자들은 “기업들이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규정에도 없는 자사주 소각을 들고 나와 투자자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현행 상법상 자사주 소각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상법 434조에 따르면 주식 이익소각은 원시정관에 규정돼 있거나 모든 주주의 동의를 받아 변경된 정관에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주총 특별결의에 의해 변경된 정관에 근거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소수설도 있지만 이 경우 채권자가 보호절차를 거쳐 ‘빚을 갚아라’고 요구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빚을 중도상환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서진석 상장사협의회 부회장은 “자사주 소각제도에 대해서는 국내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엇갈리기 때문에 기업들이 실제 자사주를 소각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밝혔다.

▽서로 소관 미루는 금감원과 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은 “상법 개정사항인 만큼 재경부와 법무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재경부 증권제도과에서도 “이 문제는 이익소각 절차에 대한 대립된 학설 때문에 생기는 혼돈으로 상법해석이 다른 것에 기인한 만큼 재경부가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이익소각 문제로 주주들간 다툼이 생기면 법무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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