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개미' 울리는 철새펀드매니저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펀드는 망가졌는데 펀드매니저는 온데간데없고….’

지난해 5월 한 증권사가 내놓은 뮤추얼펀드에 1억원을 투자한 김현수씨(45)는 최근 수익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투자수익은커녕 원금을 20%나 까먹은 상태였지만 담당 펀드매니저는 없고 다른 직원은 ‘그 사람 회사 그만 뒀는데요…’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철새’ 펀드매니저들의 이동〓증권사 투신사들이 판촉을 위해 내세운 간판급 펀드매니저들이 잇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

L증권의 간판 격인 P부장은 대형 뮤추얼펀드 4개와 투자자문계좌 등 4500억원 어치를 굴리다가 자문사를 차린다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H투신에서 ‘바이코리아펀드’ 1조5000억원 어치를 운용하던 K부장은 외국계합작운용사 상무로 스카우트됐고 D투신 간판매니저인 K부장도 자문사 사장으로의 변신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신사들은 다른 회사에서 매니저들을 대거 영입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달 말 인센티브를 받아 챙긴 펀드매니저들이 4월중 또 한차례 ‘매니저 대이동’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럴해저드’에 투자자 분노〓문제는 매니저들이 철새처럼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개미투자자들만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금융기관측이 해명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한 증권사 영업직원은 “매니저 명성만 믿고 돈을 맡겼는데 이렇게 ‘나 몰라라’하고 회사를 나가버리면 뒷감당은 누가 하느냐”는 고객들의 항의에 시달릴 일을 걱정했다.

펀드매니저들이 장세 예측을 잘못하는 바람에 손실이 난 펀드가 적지 않은데다 만기도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정작 고객이 돈을 찾을 시점에서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펀드관리 포기하고 나가는 이유〓펀드매니저들은 가치주가 몰락하는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데다 만기가 다가오는데 수익률은 오르지 않아 초조해한다.

대규모 손실을 냈다는 꼬리표가 두려운데다 고객들의 빗발치는 항의도 매니저들이 자리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펀드발매때는 전국을 돌며 투자설명회까지 열고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해놓고는 수익률이 오르지 않자 발을 빼는 것. 거액연봉으로 스카우트할 줄만 알았지 매니저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회사측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남은 펀드는 ‘서자(庶子)’취급〓투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남은 펀드를 책임지고 제대로 굴릴 사람이 없다는 것.

투신사들은 펀드매니저가 떠나면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조금씩 나눠 관리하지만 펀드를 넘겨받은 펀드매니저들은 통상 ‘내 펀드가 아니다’며 서자취급을 한다.

심지어 일부 펀드매니저는 특정 펀드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넘겨받은 펀드를 이용하는 바람에 수익률을 까먹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 우재룡한국펀드사장은 “외국에서는 건전한 투자클럽을 형성하는데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한몫하고 공익성이 강한 펀드의 경우 운용보수를 받지 않고 무료 봉사한다”며 “이에 반해 국내 매니저들은 몸값 높이는 데만 익숙해 마치 헤지펀드처럼 회사를 들락거린다”고 무책임한 펀드매니저의 행태를 꼬집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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