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공부 못한 한'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1분


대학에 돈이나 땅을 내놓는 독지가들이 부쩍 늘어났다. 모교와 후배를 위해서, 일찍 떠나 보낸 자식이 그리워 생전에 다니던 학교에 거액을 내놓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슴 뭉클한 것은 평생 절약하며 살아오다 전 재산을 기부하는 노인들이다. 삯바느질 행상 등 고생고생 해가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대학에 주는 데는 아무래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듯한데 그 초탈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

▷이들은 돈을 기부한 배경에 대해 ‘평생 공부 못한 한이 맺혀서’라고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승의 삶을 정리하는 마당에 털어놓는 말이니 그 어떤 것보다도 가슴속에 사무쳤던 생각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외국 사람들이 ‘공부 못한 한’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할 듯하다. 공부란 기본적으로 하기 싫은 것이고 또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마는 선택의 문제다. 그런 공부가 어떻게 ‘한’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속 깊은 곳의 응어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대학의 의미는 우리 형편에선 매우 특별한 측면이 있다. 한마디로 대학을 나온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여러 면에서 심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끼리도 명문대와 나머지 대학이 나누어진다. 이런 차별과 편견이 우리나라처럼 심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바로잡지 않는 한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 기부문화는 초기단계다. 기부 대상이 합리성을 띠기보다는 다분히 정서적인 관점에 좌우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결식아동이나 소년소녀 가장에서부터 핵가족화와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급증하는 노인소외계층 등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선진국에서는 기부 대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민운동단체들도 빈한한 살림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에 대학은 ‘대학 불패’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혜택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앞으로 기부문화가 제대로 발전한다면 대학 중심의 기부관행은 바뀌어지지 않을까.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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