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피휘-避諱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40분


전제군주 시대에 한국과 중국에서 천자나 부모, 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문장에서도 쓰지 않고 피했는데 그것을 避諱(피하고 꺼림)라고 한다. 천자나 孔子의 경우 전국적으로 避諱하여 國諱라고 했으며 조상은 한 家門에 한해 避諱했으므로 家諱라고 했다.

避諱는 周나라 때부터 시행돼 唐宋시대에 엄하게 적용되는데 대체로 闕字(궐자)와 厥劃(궐획), 改字(개자)의 3가지 방법이 있었다. 闕字는 해당되는 글자를 아예 쓰지 않고 공란, 즉 정사각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厥劃은 글자의 일부 획을 생략하는 방법으로 지난 회에 언급했던 唐太宗 李世民의 경우 民자를 氏자로 대치했다. 마지막으로 改字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같은 뜻의 다른 글자로 바꾸는 것이다. 唐太宗 때 世를 代로 바꾼 것이나 蘇東坡(소동파)가 조부의 이름 蘇序(소서)를 피해 평생 序文을 引文, 또는 敍文이라고 썼던 것이 좋은 예다.

避諱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오면 엄격히 시행돼 백성들의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왕은 되도록 이름을 僻字(벽자·잘 사용되지 않는 한자)로 사용해 백성을 배려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 쉽게 읽을 수조차 없는 어려운 글자가 많다.

避諱를 범하면 불경죄라 해 엄한 처벌이 따랐다. 淸의 乾隆(건륭) 때 王錫侯(왕석후)는 字貫(자관)이란 책을 썼다가 斬刑(참형)을 당했다. 凡例중에서 乾隆의 조부와 부친인 康熙(강희), 雍正(옹정)의 이름자를 사용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鄭錫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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