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4년전 '그 타령'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꼭 4년 전 이맘때 치러진 96년 ‘4·11’ 총선 신문 스크랩을 훑어보던 기자는 선거판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똑같을까 하는 생각에 적지 않게 놀랐다.

우선 여당의 신당창당부터 빼박은 듯 닮았다. 96년 2월6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집권여당인 민자당의 간판을 내리고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총선 3개월을 앞두고 국민회의를 모태로 ‘새천년민주당’을 출범시켰다.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는 “호박에 줄친다고 수박 되느냐”고 여당의 신당창당을 비아냥댔다.

여야의 ‘안정론’ 공방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4년 전 이맘때 ‘안정론’으로 싸움을 건 쪽은 국민회의였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는 “국민회의를 제1당으로 만들어야 정국에 안정이 온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국민회의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여소야대가 돼 정국이 불안해진다”고 반박했다. 지금은 양측이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자민련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애용하는 ‘보수논쟁’은 지금보다 더 기승을 부렸다. 자민련이 ‘유일보수당’을 선언하자 신한국당이 ‘사이비 수구세력’이라며 자민련을 맹폭했다. 국민회의는 ‘도토리 키재기’라고 양쪽을 싸잡아 비난했다. 대통령의 선거개입 공방도 마찬가지다. 김영삼대통령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역사 바로세우기’를 강연하자, 야당은 ‘선거개입’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15대 선거의 추세대로라면 다음에는 ‘핫바지론’ ‘싹쓸이론’ ‘색깔론’이 나올 차례다. 8년 전이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거철이면 ‘그 가락에 그 타령’이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반복되는 현실. 가수 이정현의 노래 ‘바꿔’가 이번 선거의 화두로 등장한 배경이 바로 이같은 ‘현실’임을 실감케 한다. 정치권이 그토록 요지부동, 바꾸기를 거부한다면 유권자가 바뀔 수밖에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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