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영주 소수서원/옛 선비들 책읽는 소리 들리는듯

  • 입력 2000년 2월 16일 18시 22분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뵌 일 없네

고인을 못 뵈어도 가시던 길 앞에 있네

가시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쩌리’

퇴계 이황(1501∼1570)이 한국 주자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회헌 안향(1243∼1306)을 기리며 읊은 시다. 두 사람은 동방성리학의 성현. 회헌은 원나라로부터 최초로 주자학을 들여온 고려의 학자이고 퇴계는 그것을 성리학으로 꽃피운 조선의 학자다. 이 두사람의 ‘격차’(출생 기준)는 무려 258년. 그럼에도 선학의 학문을 기리는 후학의 용심(用心)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한국 최초의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소수서원(경북 영주시 순흥면)으로 그 답을 찾아 떠난다. 서울을 출발, 5번국도를 따라 충북의 제천과 단양을 거쳐 백두대간(소백산)의 죽령을 넘으니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경북 영주시) 땅이다. 서울∼죽령의 산하에는 눈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고개 너머 영주땅은 봄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역사를 모르면 유적답사는 수박 겉핥기다. 소수서원의 너른 마당에 빽빽한 낙락장송이며 그 옆을 흐르는 맑은 죽계수(竹溪水), 서원의 건물들 모두가 그 사연을 알고 나면 달리 보인다.

“야물기(단단하기)가 금강석 같다 해서 금강송, 껍질이 거북등 같다 해서 구피목(龜皮木), 어떤 추위도 견딘다 해서 세한지목(歲寒之木), 임금의 관을 만든다 해서 황장목(黃腸木) 등등 이름도 다양한 소나무지만 여기서는 학자의 풍모를 가르치는 학자지수(學者之樹)라 불립니다.”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이고장 출신 회헌의 학문과 인품을 기려 1543년 세운 소수서원(초기 이름은 백운동서원). 건물의 배치를 눈여겨 보자.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학문이지만 우리 식으로 소화하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첫 실례는 교실에 해당하는 강학당과 회헌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 본래 서원은 선현을 모시며 유생의 학문연구와 덕성함양을 도모하던 곳이다. 때문에 가르치는 학교와 제사 올리는 사당을 함께 두는데 그 위치가 중국은 ‘전학후묘(前學後廟)’다. 그러나 소수서원은 서쪽을 으뜸(남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오른편)으로 삼는 우리식의 방향잡기인 ‘이서위상(以西爲上)’에 따라 ‘동학서묘’(동쪽에 강학당, 서쪽에 문성공묘)를 택했다. 소수서원 학예연구관 박석홍씨는 “소수서원에서는 동학서묘 외에도 중국의 특정인(공자 등)을 모시는 성균관 향교와 달리 우리 성현을 모시는 등 우리식 교육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거의 나란히 서에서 동으로 배치된 장서각(도서관), 직방재와 일신재(스승숙소), 학구재 지락재(기숙사)를 보자. 책은 ‘좌우지선(座右之先)’의 예에 따라 가장 으뜸자리인 서쪽에 두었다. 학생기숙사는 동쪽 끝. 그나마 행여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뒤로 두 칸 물려 지었고 대청 및 방바닥 높이도 스승숙소에 비해 30㎝를 낮췄다. 학문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까지 가르친 학문과 인격수양의 도장이었다.

소수서원이 문을 닫은 것은 1888년. 수학한 유생 4000여명 가운데 돋보이는 이는 퇴계다. 그는 풍기군수를 지내던 1550년(명종5)에 ‘소수서원’이라는 명종의 친필편액을 하사받았다. 이것으로 백운동서원은 소수서원으로 바뀌며 명종에 의해 공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게 됐다. 퇴계는 소수서원에서 가르칠 때 무쇠장이(무쇠그릇 만드는 공인)를 제자로 삼아 소수서원이 신분과 계급을 따지지 않는 평민교육의 실천도장임을 몸소 보여주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 여행수첩 ▼

▽부석사〓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소수서원에서 멀지 않다. 676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중심사찰로 주불전인 무량수전은 국내 목조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국보. 여기에 봉안된 본존불은 부처를 모신 보통의 사찰과 달리 아미타여래. 사찰 앞으로 펼쳐진 소백산 경치가 아름답다.

▽세금내는 소나무 ‘석송령’(石松靈)〓영주와 이웃한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600년 고령의 거대한 노송. 높이 10m에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4.4m나 된다. 1930년경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소나무라며 ‘석송령’이라고 이름붙인 후 자기 소유의 땅 6600㎡를 등기상속해 주었다. 이 땅에서 나오는 수입은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그 수입에 세금도 부과돼 ‘세금내는 소나무’라 불린다.

▽나일성천문관〓예천군 감천면. 한국천문학의 원로인 나일성박사(전연세대교수)가 지어 지난해 문을 연 지구상 유일한 천문도(天文圖)박물관. 다양한 해시계와 천문도 전시.0584-654-4977

▽맛집 ‘풍기인삼갈비식당’〓영주시 봉현면 오현리. 결명자 음양곽 대추 뽕나무뿌리껍질 황기 계피 감초 등 11가지 약초와 뿌리를 넣고 달인 한방차로 고기(돼지고기, 쇠고기)를 재워 얇게 썬 수삼과 함께 굽는다. 맛이 담백하고 소화가 잘되는 게 특징. 주인 조춘앵씨가 직접 담근 인삼주 등 약술과 한방차도 곁들여 낸다. 돼지갈비 1인분(250g)에 5000원. 0572-637-4830

▼ 봄방학 여행상품 ▼

고산자답사회(02-732-5550)는 20일부터 5차에 걸쳐 영주로 답사여행을 떠난다.

▽당일〓20, 27일, 3월1일 출발. 소수서원∼부석사∼석송령∼나일성천문관. 3만7000원(어린이 2만9000원)

▽2박3일 엄마와 함께 하는 어린이 충효예절교육〓24, 28일 출발. 소수서원 충효예절교육 참가∼죽령 해맞이∼부석사∼나일성천문관∼아흔아홉칸 양반집∼풍기인삼시장견학. 9만5000원

<영주〓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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