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나부터 먼저 변하자

  • 입력 2000년 1월 4일 19시 42분


밀물이 어느날 바닷가 오두막집 모자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엄마 바닷가에 나가 놀면 안돼?”

“지금은 밀물이기 때문에 안된단다. 썰물이 되면 나가 놀렴.”

“엄마 언제 썰물이 돼? 빨리 썰물이 됐으면 좋겠어.”

가만히 보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강아지 바다새 등 모두가 자기를 싫어하고 썰물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밀물은 썰물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됐다.

밀물은 어느날 바닷가의 노송에게 물었다.

“모두가 썰물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썰물이란 녀석은 어디에 있는 누구입니까?”

노송은 대답했다.

“썰물은 바로 너자신이란다.”

어느 스님의 수필집에 나오는 밀물 썰물 이야기의 요지다.

새해, 새 천년이 시작됐다.

21세기가 갓 시작된 새해 아침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모두들 새해, 새 천년의 각오와 희망과 포부를 다진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게 어제의 연속일 뿐이다. 법과 제도, 사회와 정부 등 모두가 그렇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렇다. 새해 들어 태어난 영아가 아닌 한 우리 모두는 어제의 사람들이고 20세기의 사람들이다. 단지 어제의 사람이 내일을 살아갈 뿐이다.

평소 아내와 늘 티격태격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부부싸움의 이유가 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자존심 대립이나 감정싸움이 주원인이었다. 그 친구가 어느 해 한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아이들 학교문제로 가족은 약 반년간 미국에 더 머물고 자신만 귀국해 하숙생활을 했던 것.

그때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나를 절감하게 됐다. 가구처럼 늘 거기에 있어 별로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아내가 막상 옆에 없게 되자 모든 게 어설프고 허전해 혼자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했다.

‘다시는 아내와 싸우지 않고 평생 아끼고 따뜻하게 보살펴주겠다.’

물론 그가 당시의 결심을 100%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이제는 상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해도 옛날처럼 심각하게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결국은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인과 미래인의 두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는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20세기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면서 우리가 버리고 가자고 그렇게도 다짐했던 것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자.

지역감정 이기주의 획일주의 소모적인 정쟁 무질서….

이 모든 게 과거 우리들의 못난 자화상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마음이 이런 못난 모습들로만 차 있는 건 아니다. 이같은 모습들을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고 부끄러워 하는 능력도 우리에게는 있지 않는가.

우리는 밀물이면서도 썰물이기도 한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어느쪽으로든 변할 수 있다. 이제는 변하자. 아내에게 동료에게 회사에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부터 변하자. 내가 바뀌면 남도 바뀐다.

정동우〈사회부차장〉foru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