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정치인 미행이라니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천용택(千容宅)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요원 일부의 야당 정치인 미행(尾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실로 50년만의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자부하고, 개혁을 기치로 내건 ‘국민의 정부’를 자임하면서, 떨쳐버려야 할 구태를 되풀이하는 권력의 모습에서 좌절감마저 느끼게 된다. 과거 군사정권 치하에서 야당 정치인에 대한 그런 미행 도청 감시에 진저리를 친 인사들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그런 범법적 행위를 묵과해 왔다는 말인가.

이것은 최근 한나라당 소속 정형근(鄭亨根)의원의 과거 행적과 관련한 고문 개입 등의 논란, 그리고 그의 더러 근거조차 불확실한 폭로정치의 궤적과는 별개의 문제다. 과거의 어떤 혐의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적법절차에 따라 증거를 갖고 소추를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천원장 표현대로 설사 안기부출신 정의원이 ‘국정원에 해(害)가 되는 일을 많이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의원의 약점을 잡기 위한 미행으로 되받아 칠 일이 아니다. 그런 미행은 그것대로 구시대 방식의 정치적 보복이 되거나 또다른 불법적 가해(加害)행위가 된다. 국정원이 피해(被害)를 주장한다면 역시 국정원법과 현행법에 따라 상대의 명백한 잘못이나 위반을 제시하면서 근거를 갖고 사법부에 처벌을 요구하고, 거기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이러한 미행문제는 개혁을 내건 정부의 도덕성 문제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정원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불법행위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정원법에는 ‘국정원장 차장 기타 직원은 정당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關與)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어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여론을 유포할 수 없으며 찬양 비방 내용을 유포해서도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처벌 규정도 엄해서 이런 정치 불관여 원칙을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엄한 규정을 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시절 그 기구와 요원들이 국가안보보다 정권 보위(保衛)기구로 앞장섬으로써 정치공작 선거개입 야당파괴같은 숱한 범법을 일삼고 결과적으로 국익을 등지는 폐해를 불러왔기 때문이다.이러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국정원법이 지금도 유명무실하게 운용될 수는 없다. 야당의원을 미행해온 요원과 그 관련자를 분명하게 가려내 법에 따라 엄벌하지 않으면 안된다. 요원 일부가 ‘자발적으로’ 한일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