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물러날때를 아는 사람'

  • 입력 1999년 11월 23일 18시 51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中日) 선동렬(宣銅烈)투수의 은퇴에 대해 23일자 아사히신문은 이렇게 썼다.

“그의 활약은 이(이종범)와 삼손(이상훈) 등 후배가 일본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일한(日韓) 양국의 가교가 됐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일본에서의 지위를 차지한 개척자였다.”

22일 그의 은퇴기자회견은 일본의 신문 방송 통신들에 빠짐없이 보도됐다. 한국만큼 대대적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일본에 와서 어떤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지를 알리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영웅’ ‘일본에 온 첫 한국프로야구선수’ ‘비장의 마무리투수’ ‘한 시즌 38세이브로 기록경신’….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가 남긴 말이었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선수생활을 마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단에서 코치 겸임 선수 등을 제안했지만 나는 선수생활을 하려고 일본에 왔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의 이 발언을 일부 일본신문은 ‘좋은 이미지로 선수생활에 이별을’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주니치가 왜 그를 붙잡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티를 남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부터 냉엄한 승부세계에서 살아온 그 자신이 물러날 때를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선동렬선수는 지난해 일본에서 발행된 한 책에 ‘민간 외교관’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도 일본인의 기억 속에 남는 선수가 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한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고생하고 있는 한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서고 있다.”

그는 이 두가지 소망을 모두 이룬 것 같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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