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28)

  • 입력 1999년 9월 22일 15시 59분


그래? 아이구 잘됐다. 내가 이젠 두 다리 쭈욱 뻗구 살겠구나.

다리 뻗는 거 좋아하구 있네. 누구 맘대루.

나는 두 팔을 휘저어 보이면서 좀 과장해서 말했다.

난 인제 해방이로구나! 마수에서 놓여났으니까.

계단 쪽에서 여러 사람의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응접실에서 화실로 들어서는 통로에 젊은이 세 사람이 들어섰다. 하나는 영태처럼 코트를 입은 키 큰 아이였고 다른 두 사람은 가죽 점퍼와 반 코트 차림이었다. 그들은 내쪽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송이 시키는대로 안으로 들어가 복사기를 마주 들고 옮기기 시작했다. 수동 인쇄기와 전동 타자기도 들어냈다. 나는 송영태에게 물었다.

어디루 갈거야?

같이 가보면 알아.

누가 느이들 따라간대?

그랬더니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라도 드리는 듯 간절한 목소리를 꾸며서 조르는 것이었다.

한 형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주라. 이 세상에서 내가 기댈 곳은 한 형 밖에는 없다구.

아니… 이젠 끝, 끝이라구.

한윤희, 중요한 일이라 그래. 다른 사람 물색할 시간두 없구. 그대는 보안두 검증이 된 셈이잖아.

나는 이번에도 마음이 흔들려 버리고 말았다.

또 무슨 대형 사고가 벌어지겠구나?

송영태는 좀 긴장하면 말을 더듬으며 얼버무렸다.

에에 그, 그러니까… 태, 태풍이 휘몰아칠 거야.

내가 왜 거기에 휩쓸려야 하니?

이번에 그, 그야말로 마지막 마무리를 해주라.

나는 일어나서 말없이 코트를 걸치는 것으로 응답을 해주었다. 길에는 일 톤짜리 트럭이 짐을 싣고 기다리고 있었고 한 사람은 운전석 옆에 다른 애들은 승용차에 타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 타자 차가 출발했다. 그 무렵에 개발이 늦던 시 중심가에 비 온 뒤에 죽순 돋아나듯 생겨나기 시작한 오피스텔에 도착했고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짐을 싣고 십일 층에까지 올라갔다. 책상과 의자와 소파에 주방이며 화장실까지 달린 번듯한 공간이었다. 나는 여기 저기 돌아보다가 송에게 물었다.

이거 몇 평짜리니?

열 다섯 평이라는데 실평 수는 아마 한 아홉 평쯤 될거야.

그래두 쓸만하겠는데.

아직 다 입주하지 않았어. 조용해서 좋잖아?

짐을 제 자리에 다 옮겨 놓고 전원도 모두 넣고나서 키 큰 젊은이가 송에게 물었다.

송 선배, 뭐 더 시킬 일 있어요?

아니 됐다. 느이들 수고 많았어. 가 보지 그래.

젊은이들이 내게는 역시 말도 걸지않고 고개만 까딱 해보이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영태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벌써 열 시네. 이 양반 또 늦는 거 봐.

누가 오기루 했어? 그럼 나는 갈게.

어어 무슨 소리야. 도와주기루 해놓구선.

낯선 사람 있는데서 내가 뭘하란 말이니?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