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철/사립대엔 「두뇌」 없었나?

  • 입력 1999년 9월 9일 19시 21분


교육부의 대학교육 지원 사업 중 가장 큰 규모의 것이 이번 BK21 사업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이 계속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고급인력을 자체 능력으로 얼마나 양성해낼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자국 내에서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해낼 수 없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대학과 교수들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BK21입안 과정에서, 그리고 선정결과가 발표되고 난 후에도 시큰둥한 표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불만족스러운 입장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이번 평가 절차와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 BK21사업의 두 가지 큰 목표는 고등학교 교육정상화와 연계된 대학입시의 개혁과 연구력 향상에 있다. 그러나 이번 선정결과를 놓고 보면 두 가지 모두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보여 원래 목적이 실종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사립대는 완전히 무시한 채 국립대와 소수의 특수목적 대학을 선정하는 것으로 과연 이 사업의 목표가 달성된 것인지는 교육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선정방식이나 수에서도 상식과 어긋났다. 공고분야가 9개인데 반해 기타분야에서는 경쟁 없이 심지어는 공고분야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면서 점수를 훨씬 낮게 받은 5개 분야를 선정한 것은 공정한 처사라고 보기 어렵다. 심사위원이나 기획조정위원의 대다수가 특정대학 출신으로 구성된 것은 처음부터 공정한 심사에 의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출발한 것이다. 대학의 교육개혁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점이나 미래의 잠재력 평가보다는 실적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선정결과가 나오자 국립대에 대거 지원이 이뤄지고 사립대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 하고 있다. 서울대가 전체의 반을 차지한 것을 두고 가장 우수한 대학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모든 학과 전공에서 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한 결과물이 아니라 교육부의 지속적인 지원 아래 독점으로 이뤄진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번 BK21사업은 미래지향적인 학사체제를 갖추려는 대학에 높은 점수를 주고 그 결과로 국내 대학들간의 본격적인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잘못된 구조 속에서 매겨진 서열을 재확인하고 그러한 것을 고착화하는 데 그쳤다면 그 지원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BK21사업의 성공여부는 그 지원결과로 인해 한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상호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지원후 사후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속적 평가를 통한 사후관리에 실패한다면 이제껏 그래왔듯이 일시적인 ‘돈 소나기’를 맞은 곳은 쓸데를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다른 대학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하면서 지원을 받기 위한 요령을 피울 생각만 하게 된다. 이러한 과거의 행태가 또 다시 반복된다면 국민의 귀중한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가 이제 국립대와 사립대의 역할분담과 경쟁방식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시점이 됐다. 만약 이번 지원이 교육부가 국립대에 정부지원을 우선적으로 집중시킴으로써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해 나가려고 한다면 미국과 같은 교육선진국의 방향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지원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 대학교육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들이 대학경영의 합리적인 측면에서 국립대를 앞서고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립대에 국립대만큼의 지원을 하는 것이 무리라고 한다면 사립대와 국립대를 동일한 틀안에서 규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리다.

사립대는 기부금으로 설립된 학교로서 기부금과 등록금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립대는 자구적 노력을 통해 학교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각종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고 정부도 사립대에 자율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교육의 정상화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김형철(연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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