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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8월 31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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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는 작년 18조7000억원에 이어 올해도 20조원쯤 될 모양이다. 국채 발행엔 이자도 붙는다. 기획예산처는 2004년부터는 적자를 내지않겠다고 말한다. 그 약속이 지켜지려면 결국 6년간 누적되는 외상값을 국민이 가외로 갚아야 한다. 올해 일반회계 예산이 83조원인 점을 생각하면 작년부터 내년까지 3년간의 적자만도 장난이 아니구나 싶다. 외상이라고 소까지 잡을 일이 아니다.
금융부실을 메우기 위해 공채를 발행해 마련한 공적자금 64조원이 바닥을 드러냈다. 대우그룹 처리에 부어야 할 돈이 10조원이 될지 20조원이 될지 모를 상황이다. 투신사 등의 부실까지 생각하면 내년에 20조∼30조원은 더 필요할 것으로 일부 관계자는 보고 있다. 공공자금의 이자와 원금손실도 당연히 재정, 즉 국민이 부담한다. 그런 사정이라 5년뒤엔 재정적자를 다 털겠다는 말을 믿어야할지도 고민이다.
또 정부가 지고 있는 국가채무는 97년말 63조원에서 작년말 143조원으로 늘었고 올해말엔 20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속이 썩은 국민연금의 지급보증까지 넣으면 국내총생산(GDP)의 70∼8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해 GDP는 490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인데도 정부 씀씀이는 늘고만 있다. 생산적 복지, 공무원보수 인상, 연금관리 등 돈 쓸 데가 많다고만 한다. 2일부터의 당정협의와 10월부터의 국회심의에서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국민회의가 중산층 서민정당으로 신장개업하는데다 총선 이전에 기공식 말뚝도 좀 박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국민회의는 원래부터 중산층 서민정당을 표방해왔는데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인지 모르겠다.
정부는 만의 하나라도 러시안 룰렛게임처럼 자신들의 임기중에만 재정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라살림을 꾸려선 안된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이 정도나마 넘긴 것도 재정만은 튼튼했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성이 무너지면 작은 충격에도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세계 여러나라의 불행한 전례를 가볍게 보아선 안된다.박찬호선수는 필승의 각오로 머리를 깎은 뒤 2연승을 올렸다. 재벌들도 자의반 타의반이지만 개혁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재벌들에 요구한 것 중의 핵심이 부채축소와 재무구조개선이다. 이제는 정부가 재정 건실화를 위해 머리를 깎을 때다. 사실은 어떤 민간부문보다 먼저 정부부터 머리를 깎았어야 했다.
▼ 재정개혁 허송세월
더 나아가 재벌들에 요구해온 경영 및 회계의 투명성과 마찬가지로 재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나라살림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 내부엔들 몇이나 되나. 재정경제부는 8월9일 발표한 ‘재정관리제도혁신 추진계획’에서 재정 불투명성의 편린을 이렇게 드러냈다.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국유재산 등 재정부문간의 연계가 잘 안돼 국가재정상태 파악이 어렵고 재정지출의 우선순위가 왜곡된다. 국가채권채무의 보고범위와 평가기준이 불분명해 재정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자산과 채무가 누락되거나 이중으로 기록돼 결산의 정확성 확보가 어렵고 정부부문 전체의 재정상태 파악이 곤란하다. 재정투입의 성과관리가 잘 안돼 공무원의 무사안일이 조장되고 정부 생산성이 떨어진다. 정부회계의 통일기준이 없고 기금회계는 자의적으로 처리돼 재무정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현정부는 출범 초기 “정부부문부터 개혁하지 않고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부개혁의 핵심중 핵심은 재정개혁이다. 재정개혁 없이는 정부의 구조조정도 기능조정도 모래성이다. 일반회계 특별회계 공공기금을 합친 올해 재정규모 총계는 334조원에 이른다. 재정 투명성만 확보되면 부패와 비리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1년반 동안 무얼 했기에 지금 “국가재정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고백이 나오나.
배운준<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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