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과 예술13]예술과 대중의 만남

  • 입력 1999년 8월 12일 19시 27분


백남준의 예술철학을 논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인간화된 기술’, 또는 ‘인간화된 예술’에 관한 것이다. 인간화 된 예술이나 기술이 어째서 백남준의 예술철학이 되었는지는 이미 ‘소통으로서의 예술’편에서 간략하게 기술하였으나 이 장에서는 특히 구체적인 작품과 연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이나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화’라는 말이 예술철학으로까지 등장한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이다. 이것은 20세기 예술만이 가지는 삶과 예술의 괴리에서 비롯됐으며 백남준은 그것에 대해 투쟁하여왔다.

백남준이 ‘인간화 된 예술’이란 말을 처음 쓴 것은 1969년 뉴욕의 하워드 와이즈 화랑이 기획한 ‘창조적 매체로서의 텔레비전’ 전시회의 카탈로그 글에서 시작되었다. 백남준은 “모든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한다”고 기술하였다. 이 전시회에선 백남준의 작품보다 오히려 이 글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미국에서는 기술이상주의 물결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저항문화운동과 흑인인권운동, 월남전 반전데모 등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의식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른바 저항문화나 히피문화로 기술되는 이 젊은이들사이에서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초한 대량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에 따른 상업주의와 기술자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좌파지식인들의 기술지상주의에 대한 다양한 비판서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이러한 지식산업의 토대에서 의식을 키워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미국 미술계는 비디오예술을 비롯하여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이른바 테크노아트가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테크노아트의 대표선수 격이며 비디오예술의 시조로서의 백남준의 공식적인 언급은 그만큼 주목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인간화 된 기술’이란 글은 원래 백남준의 오리지널이 아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철학자이던 노버트 위너의 매체철학이론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 그 증거로 1970년 로즈 아트미술관이 전시 도록으로 발간한 백남준의 글 모음집 ‘비디오와 비디오학’(Video ‘n’ Videology)을 보면 위너의 글을 다수 인용하고 있는 장면이 발견된다. 그 가운데 가령 “위너가 인간화 된 기술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인간화 된 예술을 이야기 할 것이다”라는 대목이 눈에 띤다. 즉 위너가 말한 ‘인간화 된 기술’에 대하여 근거를 명확히 밝힌 뒤 그 상대어로서 ‘인간화 된 예술’이란 말을 탄생시킨 것이다.

어쨌든 그의 ‘인간화 된 예술’이란 말은 매체예술에서 하나의 미학적 경구가 되었으며 특히 과학기술을 토대로 예술형식에서 반드시 참고되어야 할 명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과학기술시대의 예술이 컴퓨터나 온갖 기술매체에 의한 이미지조작에 의존하는 경향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예술이 과학적 발명품처럼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백남준의 ‘인간화 된 예술’이란 격언은 그만큼 의마가 있다.

백남준의 인간화 된 예술을 향한 실천은 특히 백남준 비디오예술 전반에서 두루 나타나고 있다. 가령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참여텔레비전 형식에서 보여준 관객과의 소통의지나 인체중심의 비디오조각작품에서 나타난 관객 친화적인 접근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60, 70년대의 간단한 기술을 토대로 한 미니멀 비디오작품도 그것이 과학기술을 이용한 예술창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정적이며 시적이다. 이밖에 늘 관객의 이해를 염두에 둔 것은 감상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예술의 인간화를 실천하는 태도이다.

대중의 우상이면서 중요한 재산, 또는 가구개념인 텔레비전은 예술가에 의하여 관객의 침대로 변경된 뒤 인간을 위하여 실용화되었다. 사람들은 생전 처음으로 텔레비전으로 만든 침대를 보았으며 그 위에 올라가 누워본 것도 처음이었다. 정보생산도구인 텔레비전은 드디어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화, 또는 생활도구화 되었 ‘텔레비전 시계’는 백남준 비디오예술의 또 다른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70년대 중반부터 텔레비전 12대, 또는 24대를 활용하여 TV시계를 만들어내었다. 제작원리는 텔레비전 주사선의 각도를 각기 다르게 조정하여 직선으로 나타난 주사선의 방향변화가 시간을 연상시키게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백남준의 첫 비디오전시인 1963년의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에 출품되었던 ‘TV 참선’을 각도만 다르게 조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관객은 다량의 텔레비전이 엮어내는 드라마틱한 연출에 매료되어 그것이 진짜 시계인 것처럼 시간을 계산하게 된다. 영상기술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으로 대체됨으로써 훨씬 친밀감을 주게 되었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는 작품은 76년 르네 블록화랑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초생달에서 만월에 이르기까지 12단계의 달의 크기변화를 비디오로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달의 크기에 따라 1년 12달의 연표를 묘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단순한 비디오테크닉이 동원되었음에도 이 작품은 아름다움이나 시적 분위기연출에서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다.

‘하늘의 별이 지구상의 중국인보다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라’는 작품 역시 12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벽면과 천장에 배치하여 하늘과 천체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해학적 제목이 재미와 관심을 더하는 이 작품은 중국의 인구와 하늘의 별을 많고 적음의 수 개념에 연결시킴으로써 과학기술시대 테크놀러지와 영상, 상징적 해학성 등이 모두 어울린 작품이다.

백남준예술의 재미는 역시 예술과 대중의 만남이며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이다. 예술대중주의를 위한 백남준의 시도는 바로 인간화된 예술을 향한 도전이었으며 그의 시각은 그래서 위력적이다.

이용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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