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80)

  • 입력 1999년 7월 28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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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못먹으면서 많은 모이를 독차지하려고 창턱을 우왕좌왕하며 다른 비둘기들에게 싸움만 거는 ‘쌈꾼’도 있었고, 발목에 아직 낚싯줄을 매단 채로 허겁지겁 겁도 없이 창문 안으로까지 날아드는 ‘먹보’도 있었다. ‘가짜 순이’도 있었는데 이것은 생김새가 순이와 너무 비슷해서 나도 처음에 몇번 속았다. 몸매도 순이와 같은 순백색이었고 순이처럼 창턱에 날아와 왼발을 꼬부리고 한 발로 서서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몇번 모이를 주었는데 맞은편 영치품 창고 지붕 위에서 무리에 섞인 다음에야 그것의 발목이 멀쩡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종걸음으로 뛰고 두 발을 움직여 자유롭게 깃을 다듬기도 했다. 저런! 절름발이 흉내를 내다니. 그 암컷은 몇번 순이와 함께 이 창턱에 와서 얻어 먹으면서 내가 순이에게 남다른 대우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게다. 그래서 모이를 먹을 때면 내 앞에서 순이의 동작의 특징을 흉내냈다. 그래서 나는 영리한 가짜 순이에게도 남다른 대우를 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건 참 묘한 느낌이었는데 처음에는 깊은 관심을 가졌다가 나중엔 지긋지긋해진 비둘기도 있었다. 나는 이 비둘기에게 ‘파리의 노틀담’에 나오는 ‘콰지모도’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콰지모도는 정말 추하게 생긴 비둘기였는데 유일하게 성별을 구별할 수 없었던 놈이었다. 아마 부화할 때부터 무슨 문제가 있었던 알이었을 게다. 놈의 몸집은 다른 비둘기들의 삼분의 이 정도나 될 정도로 작고 모자랐다. 콰지모도는 목도 짧고 몸매도 땅딸막한 게 비둘기라기보다는 무슨 메추라기 새끼처럼 보였다. 털빛도 지저분한 진회색에 참새 같은 갈색 털이 섞여서 추레해 보였다. 이놈은 살아가는 데에 비극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부리가 고장나 엇갈린 가위처럼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휘어진 젓가락 같이 그것으로는 모이를 정확하게 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주둥이 부근이며 목덜미 부근은 언제나 사육장에서 주는 곡물가루가 누렇게 묻어 있었다. 부리가 그 모양이니 깃도 다듬을 수가 없어서 언제나 지저분해 보였다. 그것은 무리에 섞이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창턱에 날아와서도 열심히 부리짓은 하면서도 한번도 제대로 땅콩 한 쪽을 못얻어먹는 눈치였다. 다른 비둘기들은 곁에 콰지모도가 다가오면 사정없이 부리로 그 머리를 쪼아댔다. 그래서 놈의 정수리 부근은 상처 투성이었고 피가 말라붙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놈의 생명력은 치열했다. 그 놈도 호젓한 시간에 나를 찾아오는 방법을 터득했다. 놈에게는 쪼개지 않은 땅콩을 통째로 주었는데 그 놈의 식사 방법은 실로 눈물겨운 데가 있었다. 어긋난 부리로 땅콩을 찍어대는데 자꾸만 창턱 아래로 떨어지고 간신히 물어 올려도 제대로 주둥이 안으로 밀어 넣기가 힘들었다.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 정말 우연인 듯이 겨우 한 알이 부리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아마 콰지모도의 먹이에 대한 치열성은 언제나 이러한 결핍과 갈급함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 놈은 나중에는 뻔뻔하게도 내가 모이를 주려고 손을 내밀면 성급하게 달려들어 손등을 쪼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괴상하게 몸을 부풀리고 갈라진 울음소리를 내면서 시위했다. 나는 놈의 엇갈린 부리가 미워서 손가락으로 잡아 거세게 비틀어 주기도 했다. 차츰 콰지모도의 치열성이 미워졌다.

그 해 겨울에 눈 내리던 날 내가 보는 앞에서 순이가 고양이에게 물려 죽었다. 얼룩줄 무늬의 고양이 깡패는 가끔씩 비둘기 사냥을 했는데 녀석은 창고를 받치고 있는 쇠기둥 아래 어둠 속에 가만히 엎드려서 먹이를 찾아 사동 앞 빈터에 내려앉는 비둘기들을 끈질기게 노렸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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